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의 정의

조은비

by 마실 MaSill






느닷없이 흘러내리는 시계,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사람들. ‘초현실주의’하면 흔히 떠오르는 작품들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등의 작가들이 지향하던 초현실주의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하며 20세기의 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예술사조이다.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어 왔던 이 사조는 시작도, 종결도 서양근대미술의 카테고리에 속했다. 초현실주의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근대미술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한국의 초현실주의적 흐름. 그 흐름의 작품들은 소외되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2025-04-17 ~ 2025-07-06)은 한국 화단에서 드물게 나타났던 초현실주의적 작품을 소개하여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소외된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해 비어 있는 미술사를 복원하고자 기획되었다.


20세기 한국에서 이 작품들은 ‘일종의 시대적 착오나 오리지널의 모방으로 간주되었다.’(1) 한국 미술의 근대화 과정에서 빠짐없이 언급되어 온 ‘한국적인’, ‘전통적인', ‘민족적인’ 정체성을 담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진정 한국적인 게, 전통적인 게, 민족적인 게 무엇인가? 근대화와 변혁을 꿈꾸는 자들에게 이 사항들은 언제나 먹으로 그린 기와집으로 귀결되어야 했는가?


덕수궁이라는 공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한국적이지 않다고 여겨진 한국의 근대 미술을 조명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덕수궁은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서양의 근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근대와 전통이 만나 하나로 어우러진 덕수궁과 한국의 초현실주의는 닮아 있다. 서양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만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은 한국적이지 않던 적이 없다. 그들이 서양의 미술을 한국에 가져올 때, 어떻게 한국의 것으로 바꾸어 전개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육명심(1993~)의 흑백사진 작업이다. 그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물을 본래의 맥락에서 탈각함으로써 전혀 다른 현실을 만들어냈다.’(2)


쇼윈도에 나란히 진열된 의수와 데스마스크, 인사동 거리에서 마네킹을 지고 가는 행인 이것은 분명한 현실의 상황이지만 어딘가 찝찝하고 미묘한 지점으로 녹아 있다.

그는 페인팅이 아닌 사진 작업으로 초현실주의에 가담했는데, 작가가 임의로 임의로 그려내지 않은 현실의 세계를 담아 냄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를 말하고자 한’(3)것이다.


여기서 ‘초현실’을 재정의할 수 있다. 초현실을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과 무관한 비존재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현실 그 자체가 관념적 현실을 초월한 상태’로 정의 내려볼 수 있다. 이는 사회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작가 개인의 무의식 세계를 그린 서양의 초현실주의 미술과 달리, 대중의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사회 전반의 의식으로 작용하게 한다. 충분히 근대적이면서도 민족적이므로 한국의 근대미술에 속할 자격이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이야기이며, 모두의 현실 그 자체의 초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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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명심, 〈초기 사진 시리즈-서울 종로구〉, 1967(2017년 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국립현대미술관
육명심, 〈초기 사진 시리즈-서울 인사동〉, 1966(2017년 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국립현대미술관








(1) 전시 서문

(2) 작품 설명

(3) 작품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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