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진
생명체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특정한 공간 속에서 무언의 연결점을 쌓아간다. 신기하게도 그 연결점은 겉으로는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실에 실존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특징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고 겹쳐진다. 그리고 그 교차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마치 친구를 사귀고 난 후, 어떻게 이 친구랑 친해졌지 하며 고민할 때 정작 그 계기는 흐릿하고 헷갈리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푸투라 서울에서 진행된 안소니 맥콜의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에선 그가 약 50년간 진행해 온 실험을 통해, 어떠한 공간 속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점에 대해 조명한다.
〈써큘레이션 피겨스〉 속 안소니 맥콜은 전시장과 똑같은 공간 속에서 찢어진 신문지를 뿌린다. 그리고 사진작가와 영화 제작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등장하며 안소니 맥콜의 모습을 끊임없이 찍는다. 영상 속 공간과 똑같이 구성된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바닥에 잔뜩 쌓여있는 신문지들을 밟으며 스크린을 바라보기도 하고, 거울을 쳐다보기도 한다. 영상 속 사진작가들이 맥콜과 그들 자신을 찍는 것처럼 관객들도 거울을 통해 그들 자신을 찍기도 하고 스크린 속 사람들을 찍는다. 영상 속과 같은 공간을 거닐고 있는 관객들은 영상 속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되기도 하며 안소니 맥콜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관객들은 스스로 공간과 자신, 다른 시간대를 걸어가는 인간들 간의 상호작용을 몸소 체험하며 느낄 수 있다.
완전하게 빛이 사라진 공간 속 〈당신과 나 사이〉와 〈스카이라이트〉만이 남게 된다. 빛은 공간을 확립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빛을 통해 면이 생기고 윤곽이 생겨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완전히 빛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은 곡선이나 직선으로 바닥에 새겨진다. 서로의 레이어를 침범하는 순간들은 마치 원래 자리 잡고 있던 선들이 일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선과 직선의 빛이 움직이며 겹쳐질 때, 관객들은 그 레이어 사이를 지나가며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소멸하는 공간 속 빛은 인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인간의 몸을 통과하지 못하고 몸에 윤곽을 새기는 빛은 관객이 빛을 지나가는 순간마다 작품 일부가 된다. 결국, 빛은 단순히 공간을 드러내는 시각적인 요소가 아닌 기존에 작품에 포함되지 않았던 관객을 작품과 연결하는 기능을 가진다.
50년 동안 지속된 안소니 맥콜의 실험은 공간을 넘어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여실히 드러내며 더욱 견고해져 왔다. 단순히 바라보는 행위, 즉 시각만이 아니라 만지고, 걷고, 듣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감각을 작품에 녹여내었다. 공간을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레이어화 된 구조 속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맥콜은 인간의 감각과 공간성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관객으로서 맥콜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관객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흐려지거나 겹쳐지는 매개체의 경계를 지나 마침내 하나의 공간에 다다른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지는 윤곽 위에 놓이며, 일방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적 실체로 작품에 스며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