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현
아트선재센터 홍영인 개인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
삶은 곡선으로 쓰인다. 사람이 손으로 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들은 자로 잰 듯 반듯하지가 않다. 올곧은 사실 위에는 항상 일렁거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도 그러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매초마다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의 정답은 그 모양새를 도무지 모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령 그늘진 미술관 화이트박스 안에서 우연히 동그랗게 내리는 햇빛을 만나기도 하는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극(劇)을 봤다. 삼청동 아트선재센터의 전시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이다.
⟨퍼포먼스 다섯 극을 위한 매뉴얼- 원형 프레임 외벽 ⟩, 2024 삼베에 자수, 8점, 각 244x56x8cm
⟨원형 프레임 내벽⟩, 2024 삼베에 아플리케, 8점, 각 241x56x8cm
미술관 3층에 들어선 순간 마치 무대에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 불시에 객이 된 멋쩍음을 뒤로하고 주인 없는 무대 위에서 곳곳에 널린 장치들을 본다. 공간 속 조용히 흐르는 정적이 꼭 누군가의 독백(Monologe)으로도 들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전시장 중앙에 있는 원형의 작품이다. 삼베로 된 4개의 곡선 프레임 밖에는 빙 둘러 사람과 이야기가 수놓아져 있다. ⟨퍼포먼스 다섯 극을 위한 매뉴얼- 원형 프레임 외벽 ⟩은 전시 중 5번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무대이자 대본, 극 그 자체이다. 그러고 보니 삼베로 된 캔버스에 새겨져 있는 다섯 개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아, 이들이 무대의 주인이구나. 극이 끝난 후 입장한 관객은 그제야 깨닫는다.
홍영인은 ⟨다섯 극⟩을 통해 '한국 현대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사의 이야기들'(1)을 조명한다. 테피스트리와 여성, 실과 바늘을 연결 짓는 건 어렵지 않다. 너무 자주 묶여서 키워드만 들어도 고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홍영인의 바느질에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 미색의 삼베 위에 자색으로 청색으로 새겨진 얼굴들은 '기생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계옥, 제주에서 반일 투쟁을 이끈 해녀 부춘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지도자 신순애' 등 노동자 여성들이다. 한 땀 씩 저마다의 부피로 홈질된 그들의 이야기는 목화의 부피만큼 도톰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노동사에 저마다 뜨거운 발자국을 남긴 여성들을 기리는 데엔 이만한 재료가 없을 것이라는 납득이 간다. 이 땀방울이 하나둘씩 모여 실이 되고 천이 되었나. 또 우리를 감싸는 옷이 되었나. 신년 탑돌이를 하듯 원을 그리니 장례를 치르는 듯한 엄숙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온도의 축제이리라.
⟨다섯 극⟩을 둘러싼 작은 기구들은 동물원의 행동 풍부화 도구에서 착안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베틀이나 실타래들 같기도, 제수 용품 같기도 하다. 해녀의 테왁이나 베틀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자리한 기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의문을 일으키고 그 지각에 틈을 만들어낸다. 극은 막 내리는 것 없이 아사무사하게 흘러간다. 어두운 방에 설치된 '<우연한 낙원>은 작가가 직접 작성하고 낭독한 텍스트를 두루미의 목소리로 재생'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협업자 오웬 로이드와 함께 목소리를 13개의 음질로 분석하여 이를 천 개가 넘는 두루미의 울음소리에 연결'한 후 재생한다.(2) 수 천의 두루미떼가 내는 소리는 합창단의 하모니, 혹은 대나무 숲에 부는 세찬 바람 소리로도 들린다. 홍영인이 조각내고 기워낸 무형의 언어들은 모호하지만 따뜻하게, 사람의 온기로 남는다.
(1) 아트선재센터 공식 홈페이지,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리플렛 참고
(2) 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