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 ⟪가난한 자들, The Poor⟫ 전시 제목에서부터 가난한 자들을 언급하고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 무언가의 결핍에 대한 전시겠구나-생각했는데 전시를 다 보고 나왔을 때 나는 주제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으로 길을 잃고 우울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그저 돈이 없다, 궁핍하다, 외롭다 등이 아니다. 나는 정말 현실적으로 가난을 본 적이 있는가? 미술이 과연 가난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미술로 가난을 다루겠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또 안될 건 뭔가. 가난이 단순한 물질적 결핍뿐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감각적 빈곤으로 포괄되며 오히려 결핍이자 가능성이 되었다. 결핍 속에서 계속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일으키는 가능성으로 다가오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그 가능성에서 눈을 돌리고 있나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하는 전시에 화가 나고 너무 슬펐다. 가난한 사람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현대 사회 구조 안에서 주변화되고 이 시스템에서 배제된 사람들로 바라본다. 이 전시는 가난을 극복해 보자던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가난을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의 민낯, 자본주의 시대에 빠르게 수용하는 포기와 우울을 넘어 위계 없는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가난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 날카롭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였고 난 이 날카로움에 내내 찔리며 전시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웅 작가의 ⟨interlude⟩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찍은 파노라마 이미지는 건물과 건물 사이 틈이 1m 채 되지 않는 인구 과밀의 주택가, 빽빽한 다세대 주택 사이 구석진 곳의 틈으로 삶의 장면을 가늠하게 한다.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이를 무심하고 꼬깃꼬깃하게 핀으로 꽂아놓은 전시 형태에 지금 우린 어디서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집이 필요하다. 그게 어떤 집이든 간에 누구든 자신의 집이 있고 그게 결국 어떤 형태로 보이는지. 나도 결국 이 도시에 끼어서 아득바득 살고 있는데.
⟨right place, wrong time⟩(2025)은 혼자 지내기에 넉넉한 방을 찍기로 하면서 돌아본 바깥에, 같은 크기이지만 여섯 식구가 살고 있는 맞은편 접과 홈리스 여성 한 사람이 주기적으로 옥상을 드나드는 걸 보고 어딘가 생경해진 집의 감각을 보여준다. 물에 담긴 사진들을 보며 ‘집’이란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담긴 필름 조각들이 ‘집’일 수 있을까. 내 집은 또 누군가에게 어떤 공간일까. 불현듯 모든 걸 끌어안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내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작품이다. 라텍스의 불쾌한 암모니아 냄새가 (특히 비가 온 날이었다) 전시장 내부를 가득 채우는데, 또 시각적으로는 화려하면서도 부패한 모습이 작품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침대에서 나오는 영상에서는 신체/성기가 변형, 퀴어 신체성, 무단 침입자와 점거인 등이 다뤄졌는데 우리는 어떤 조건으로 태어났는지 의문을 던졌다. 섹슈얼한 의상으로 걸레질하는 메이드는 누군가의 재생산 노동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성기가 변형되며 성/젠더 정체성과 계급 정체성이 얽히었다. 이 작품이 주는 과잉된 불쾌감이 마냥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구조 속에서 나는 내가 보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 다들 외면하는 것들에 대해서 누군가는 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꼭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는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 비디오 작품에 대해 흥미가 있지 않았는데 이주연 작가의 ⟨헤비웨더⟩(2025)는 계속 기억에 남는다. 마포의 한 한강 변에서 지금의 당인리 발전소 자리에 있었던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 고미반도체의 젊은 여공들의 행방을 찾는다. 거기에 창원의 한 산업체에서 기기 검수 일을 하여 서울 월셋집의 보증금을 마련한 ‘공기’의 말과 한강에서 낚시로 생활비를 버는 토박이 할아버지들의 얘기 등이 섞여 계속해서 타인의 이야기로 빈약한 기록을 짚어간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서 가깝지만 정말 아득히 먼 누군가를 찾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도시에 가려진 존재들을 더듬어가며 정말 유령같이, 이렇게 발 디딜 틈 없는 곳에서. 엄청 먼 옛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크게 와닿았다. 원래 여기가 뭐였는지, 어디였는지, 누가 머물렀는지 관심 없었다. 하지만 이젠, 서울에는 여전히 과거가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전시 관람을 마무리하며 ⟪가난한 자들⟫ 전시는 가난한 이미지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가난의 이미지를 직접 표출하며 관람자에게 ‘가난’에 대하여 바로 눈앞에 펼쳐주었다고 생각한다. 외면하는 사회에게 계속 해서 말하는 행위이다. 가난한 미술로, 말할 수 없는 자들을 대변하여 대담하게 외치는 이미지들을 보고 나 또한 많은 질문을 받고 생각에 잠기어…. 서울을 걸으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언제부터 인가 익숙해졌고 여기가 누구의 집이었는지, 누가 떠났는지 누가 착취당하는지 누가 보이지 않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가난한 자들 The Poor⟫
2025.02.13 - 2025.04.12
뮤지엄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