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왔다.

그네와 곶감

by 이혜원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온단다. 화가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농협마트에서 생탁을 사 와서 특제 감기약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먹던 밥을 한 숟갈 남기고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점심 준비로 압력밥솥에 쌀을 씻어 넣어놓았는데 운동을 마치고 오는 차 속에서 화가가 김치국밥이 먹고 싶다고 하여 밥과 김치국밥 두 가지를 만드느라 바빴더랬다. 바쁘면 더 바쁜 일이 생긴다.


손님 중에 남편 되는 장로님은 오래전에 우리 집 그네를 만들어 주었다.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네가 참 이쁘다고 했더니 당장 설치를 해 주겠단다. 그네 재료가 되는 커다란 나무들을 손수레로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어깨에 메고 와서 조립을 했는데 대단한 힘이다.


그는 암을 앓았는데 혈액암이었단다. 대단한 인내로 암을 이겨내었다고 했더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단다. 아멘!


두 사람은 교회청년회에서 만났단다. 그는 청년회장이었고 부인되는 권사님은 부회장이었는데 회장이 부회장에게 호의가 있다는 표시를 해 오더란다.


권사님은 29세로 당시에는 노처녀였다. 그녀보다 더 노처녀인 언니에게 상담을 하고 장로님을 선보였더니 네 나이가 꽉 찼는데 저 사람 잡는 것이 좋겠다며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단다.


노처녀 언니는 권사님이 결혼하고 나서 한참 뒤에 한참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 결혼했단다. 나이 어린 청년이 그녀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장로님은 암투병 중에 시골의 언덕에 터를 마련하여 두 채의 집을 짓고 살림집 앞에 카페를 차렸다. 카페 주위에는 커다란 작품을 설치하고 카페 안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로 채웠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쉬어야 하는데 일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지만 일하며 건강을 되찾았다. 일이 삶의 의미가 된다.


공기가 좋지 않은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터전을 옮긴 것이 참 잘된 일이었단다. 도시에 살 때는 자고 나면 시커먼 먼지가 앉아 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일주일이 되어도 하얀 먼지만 나온단다. 권사님은 시골로 이사하고 나서 감기를 한 번도 앓아본 적이 없단다.


카페 앞에 공간을 만들어서 국숫집을 열었단다. 국수와 차를 연결하여 1만 원을 받는단다. 식사와 차 마시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인기가 많단다. 국숫집 손님이 많아 쉼 없이 일을 하다가 이러다가 안 되겠다며 월요일은 휴무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쉬는 날에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고 나서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참 잘하셨어요~라고 해 주었다.


제주설록과 태추단감을 대접했더니 태추단감은 처음 먹어본단다. 아삭하며 시원한 맛이 일품이란다. 화가가 말리고 있는 곶감을 가져오라고 하여 4개를 가져가서 하나씩 먹었다. 말랑말랑 아직 덜 된 곶감이 맛나다.


우리 집 곶감을 이름 모르는 이가 4개를 먹어버렸다. 한꺼번에 4개를 먹으면 표가 날까 봐 채반 하나에 하나씩, 가장자리에 있는 것만 가져갔지만 외출해서 돌아온 화가가 곶감이 없어진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시골사람들은 남의 것에는 손을 대지 않으니 동네사람은 아니다. 누굴까?


방문 손님에게 냉동고에 있는 생닭을 포장하여 선물로 건넸다. 하나뿐인 오골계 생닭이다. 우리는 그냥 빈손으로 왔는데~라고 하여 그냥 오시는 것이 제일 좋다고 답했다. 빈손으로 오는 이가 참 좋다. 그네에 앉아서 방문기념사진을 찍었다.


방문해 주어 고마웠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보냈더니 좋은 날 부추전 부쳐서 초대하겠단다. 화가가 매운 고추를 넣은 부추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손님이 떠나자마자 화가에게 특제감기약을 건넸다. 저녁식사 후에는 작가도 한잔 먹어야 한단다. 두 개의 컵에 같은 양을 담아서 함께 마시자고 하더니 작가의 컵에 담긴 것을 자신이 먹겠단다. 웃었다.


조카가 추수감사주일 특송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왔다. 고맙다.


어제도 참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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