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제타>(1999)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개천에서 용난다’부터 ‘내돈내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미사여구라는 환상에 중독돼있다.
미사여구는 중독성이 강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를 근사히 만들어준다. 비낭만적 서사는 근사히 덜어내고 낭만적 서사는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미사여구는 그래서 미사여구다.
<로제타>는 미사여구와 상반되는 영화다. 주인공은 열여덞 소녀 로제타. 평범히 사는 것이 꿈이다. 일자리를 구하고, 친구를 사귀고, 가난이라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 것. 꿈이 그게 뭐냐 싶다가도 주소지는 캠핑장 트레일러이고 동거인은 알콜릭 엄마인 그에게는 벅찬 일이다. 해고되고 구직하고 취업하고. 다시 해고되고 구직하고 취업하고. 반복되는 일을 번복하기 바쁜 그에 미사여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로제타>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러닝타임 내내 로제타 손발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 카메라다. 해고되면 함께 따지고 구직하면 함께 뛰고 취업하면 함께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들고 낑낑대는 카메라에 내 눈도 함께 바빠진다.
중반부에 들어서야 카메라는 처음으로 얌전해진다. 로제타는 와플 가게에서 만난 리케와 친구가 된다. 그는 숙식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물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로제타를 돕는다. 덕분에 로제타는 보통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체험이라 기술한 건, 단발성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로제타는 또다시 해고된다. 카메라는 또다시 바빠진다.
소중히 얻은 친구를 배신하며 카메라는 절정으로 바빠진다. 사해행위로 쏠쏠히 용돈벌이를 하던 리케를 로제타는 사장에 밀고한다. 친구는 실직하고 그 자리는 로제타가 메꾼다. 어린 물고기는 낚지 않고 풀어주며 제아무리 돈이 급해도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겠다는 로제타이기에 황당한 전개다. 그러나 삶은 원래 갑자기 치사해지고 더러워진다.
카메라가 다시 얌전해지는 건, 마지막 시퀀스다. 로제타가 결심했기 때문이다. 술에 쩔어 노상 취침 중인 엄마에 단수까지 확인한 그는 달걀 하나를 삶고 전화를 건다. 내일부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전화다.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 이렇게 빨리라는 의문이 스쳐갈 무렵 그는 가스통을 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마침 등장하는 리케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로 그를 방해한다. 가스통을 들고 낑낑대던 로제타가 쓰러진다. 그는 가스통을 부여잡고 서럽게 운다. 리케가 로제타를 일으켜 세운다. 이쯤이면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저 가스통의 무게를.
<로제타>는 없는 게 많은 영화다. 미사여구가 없고, 새것으로 보이는 물건 하나 없다. 영화라면 있어야 할 ‘그럼에도’도 없다. 그럼에도 더 행복하다던지 그럼에도 더 아름답다던지 그럼에도 더 아련하던지. <로제타>에 있는 건 로제타뿐이다. 손발을 따라 바삐 움직이던 카메라도 그래서다. 정직하게 감상할 것. 빈틈없이 목격할 것. 그래서 마침내 그 가스통의 무게를 느껴낼 것. <로제타>는 단순하지만 그래서 근사한 영화다. 미사여구에 중독된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미사여구에는 촉감이 없다는 결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