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2013) 알폰소 쿠아론
단 하나의 선택지 앞에 홀로 우주에 남겨진듯한 때가 있다.
아등바등 예상되는 결과와 씨름하던 그때. 그때를 시각화시킨 영화가 있다. <그래비티>다.
지구가 훤히 보이는 이곳은 누가봐도 우주. 가십과 업무대화가 번갈아 오가는 미국식 대화에 익숙지 않은 여자. 초보 우주사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다. GRAVITY(중력)라는 제목처럼 우주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그는 곧 표류된다. 폭발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불타고 등 러닝타임상 5분 간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그는 이제 유일한 생존자다. 필사적인 몸부림과 달리 이미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는 죽기로 결심한다. 더 매력적인 선택지라기보다는 선택지가 그것뿐이다.
라이언 스톤은 주인공이다. 당연히 그대로 죽지 않고,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어찌됐건 밑져야 본전이다” 우주 정거장을 떨어뜨려 지구로 착륙을 시도한다. 타죽거나, 무사히 착지해 훗날 무용담이 되거나. 예상되는 결과는 두 가지이나 예상은 어렵지 않다. 풍덩. 물과 산 외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대자연. 마침내 땅을 두 발로 디디며 영화는 끝난다. 동시에 2002 한일 월드컵처럼 관객의 꿈도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 <그래비티>와 같은 SF 장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건 내게 일어날 리 없으니까. 허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미 내게 일어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흔한 회상씬 하나 없이 공허함을 양분한 1시간 30분. 좋게 말해 진지해지고 솔직히 말해 지루하기도 하다. 알감독은 그 간극을 보편적이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로 메꾼다. 어느새 나는 라이언 스톤을 응원하고 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에.
“어찌됐건 밑져야 본전이다” 단 하나의 선택지 앞에 홀로 우주에 남겨진듯한 그때. 그때면 늘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 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라이언과 나는 주술을 건다. “어찌됐건 밑져야 본전이다. 어떻게되든 엄청난 여행일 거다.” <그래비티>도 지금 그 선택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