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라이>-실베스타 스텔론 외 1인 더블 인터뷰
영화를 합니다. 감독이 되려 단편 시나리오를 씁니다.
엄청난 거장이 될 수도 있지만, 엄청난 백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선 그게 불안하고, 나도 그게 불안합니다. 어찌됐건 영화를 합니다. 시나리오를 씁니다.
실베스타 스텔론도 영화를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엄청난 거장이 되었지만, 엄청난 백수이기도 했습니다. 거장인 만큼 강하지만, 백수였던 만큼 약했습니다. 어찌됐건 영화를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영화 <슬라이>는 백수 스텔론과 거장 스텔론 사이 이야기를 심도 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 이야기도 심도 얕게 들을 수 있습니다.
작년 2월 10일이었습니다. 뭔가 그럴싸한 독립영화를 보고 싶었고, 마침 <다음 소희>가 개봉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노트를 챙겼고, 영화가 시작됐고,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스텔론이 대학생 때였습니다. 이유는 모르겠고, 아무튼 연극 오디션을 봤습니다. 합격을 했고 무대에 섰습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관객이 말합니다. “이걸 직업으로 삼지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영화를 하겠다 결심했냐고. 저는 말합니다. ”그때 군바리였거든요“ 어차피 잃을 게 없으니 ‘함해보자’ 시작한 거예요. 그냥 그렇게 말하다 보니까 진짜가 됐어요. 감독을 찾아가고, 촬영지를 찾아가고, 영화제를 찾아가고, 평론글을 써보고, 영화 연출 대학에 지원해보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정말 어쩌다 보니 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스텔론을 손가락질했습니다. 단역과 포르노 배우를 전전하던 스텔론은, 오늘도 할 일 없이 TV를 봅니다. 당대 유명 복서 알리와 어느 무명 복서의 경기입니다. 결과는 알리의 승리였지만, 무명복서의 펀치 한 방이 알리의 무릎을 한 번 꿇립니다. 그 한 방이 <록키>를 만듭니다.
대외적 명분이란 건, 물론 있습니다. 영화 연출 대학 면접 때 했던 말인데, ”영화는 제가 뭘 하고 싶었던 사람인질 발견해줬습니다. <다음 소희>라는 영화로부터 시작된 사유가 제가 더 나은 인간이 돼서 사회에 재참여하게 됐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 위해서 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떤가요? 멋지지 않나요?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스텔론도 물론 있습니다. ”매번 내가 살아온 삶이 평가절하된다면 공허함만 남아요. 그 공허함은 절대 채워지지 않아요. 전 그걸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어요. 어떻게든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요. 전 희망을 주는 사업을 하고, 슬픈 결말은 싫거든요“ 어떤가요? 전 멋있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결과로 하나씩 증명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근사한 말이 미사여구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 재능이 있는 걸까? 정말 이 일을 좋아서 하는 걸까? 정말 이 일을 계속할 깜냥이 될까? 밥은 벌어먹고 살까? 이런 고생을 감수할 만큼 즐거운가? 재능 있다는 이야기는 가식으로 들리고, 그간의 시간이 허송세월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재고 또 재고. 그러다 보면 진심이 검증되리라 믿으며 호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호소란 원체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그에 상응한 환상 같은 게 실존할 리 없습니다. 비가 와서 와이퍼를 켜듯, 파란불이 돼서 악셀을 밟듯 그냥 하는 거죠. 그래서 불안하면, 불안해서 씁니다. 실베스타 스텔론이 30년간 <록키> 시리즈를 쓴 것처럼.
영화를 하기 전에, 독립잡지를 창간했었습니다. 2022년에요. 출판산업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는, 주머니서 휴대폰만 꺼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 안 되는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맞습니다. 돈 안되고, 돈 많이 드는 일이 ‘좋은 일’ 아님 뭡니까. 사람들은 좋은 일 한다며 우리를 조롱하기도, 숭배하기도 합니다. 못나면 조롱이고 잘나면 숭배입니다.
우리는 이에 철학적인 멘트를 장전하고, 그들을 뻑가게 할 타이밍을 기다립니다. 사실 끄단 건 다 필요 없는 데 말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심플하게 가자고요.
전 답을 정했습니다. “밥은 벌어먹고 살겠죠 뭐. 반찬이 문제지”
스텔론도 답을 정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고소하든지요”
말하다 보면 진짜가 되겠죠 뭐. 진짜로, 어쩌다 시작했던 그때처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