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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경 Mar 21. 2024

선택의 순간

영화 <야구소녀>(2019)

단기간이었지만, 내 꿈은 야구선수였다. 자칭 타칭 동네야구 에이스 투수였던, 나는 최고 구속 80km/h에 30개 중 25개를 스트라이크로 꽂을 수 있는 기교파 파이어볼러였다. 아버지께 야구 시켜달라 한 기억이 선명하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던 아버지가 반대도 아니고 거절을 했다. 그러다 야구부라던 놈들과 시비가 붙었다. 아파트 단지 내 포수 없이 야구하기 가장 완벽한 벽을 둔 언쟁이었다. 진 팀이 비키기로 했고,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한복판으로 던지던 갈비뼈로 던지던 죄다 얻어맞았다. 그놈은 4번도 아니고 7번 타자였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내 꿈은 그렇게 무너졌다.

 

<야구소녀> 속 주수인(이주영) 꿈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강속구를 던지는 천재 야구소녀’로 주목받던 수인이 공을 던지지만, 남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130km/h 짜리 ‘똥 볼’이 된다. 수인의 화려한 타이틀에는 ‘여자치곤’이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건 대학 진학과 프로 지명 앞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다. 그마저도 동기 정호가(곽동연) 학교 최초 프로 지명에 성공하며 소멸될 위기다. ‘새거’는 언제나 ‘새거’로 소멸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갑자기 찾아온다. 현실은 선택을 강요하고, 선택은 책임을 강권한다. 고대했던 수료와 전역과 졸업은 그래서 무섭다. <야구소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도 프로 지명도 실패한 수인으로 ‘선택의 순간’서 방황하던 수많은 삶을 비춘다. 당신처럼 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될 줄은 몰랐다.


야구는 숫자로 결과가 나타나는 스포츠다. 수인도 자기 볼이 ‘똥 볼’이라는 걸 알고, 처맞는 안타가 몇 개인지를 안다. 사람들 말처럼 포기하는 게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수인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머 씨발이라며 일어나, 새벽에 눈을 감기 전까지 후끈거리는 뒷목을 주물러야 하는 이유는 아집이 아니다. 불안이다.


“내가 만약에 진짜 잘하는 거면, 그런 거면 어떡해.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너도 모르겠는 걸 나도 모르겠으니 미치겠다. 차라리 도라에몽이 나타나 넌 어차피 안될 테니 빨리 그만둬라,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수천 번은 생각해 본 거 같다. 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 후끈거리는 뒷목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뇌세포가 하나씩 터져버려도 상관없다, 라고 수천 번은 생각해본 거 같다.


선택을 하기 전, 책임질 것들을 살펴본다. 대체로 그지 같은 것과 안타까운 것, 아까운 것들이다. 책임을 진다는 건, 그래서 고상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신념과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수인은 자신을 ‘천재 야구소녀’로 올려놓았던 강속구를 포기하고 변화구 투수로 거듭나길 선택한다.


다시 마운드에 선다. 처음 던져보는 변화구는 제구가 엉망이고 각도 휘질 않는다. 그냥 느린 직구다. 학교에선 핸드볼을 권하고, 집에선 공장일을 권한다. 그럴수록 수인은 변화구를 연마한다. 연마하기만 한다면 정말 프로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변화구는 프로선수들도 힘들다는 너클볼이니까(손톱 힘으로 던지는 고난도 변화구).


수인이 분발할수록, 관객은 본인 과거를 투영하며 응원을 시작한다. 그러며 <야구소녀>는 허점들이 드러난다. 냉소적 대사와 이미지로 현실적 영화를 표방하지만, 너클볼은 그렇게 빨리 연마될 리 없고.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제각각 감상에 젖어있다. 찾아오는 기회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야구‘소녀’로 이목을 끌어놓곤 야구‘소년’이었어도 상관없을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말로 다다를수록 영화는 나른해지고, 결과적으로 공허함만 남는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좋은 사람’이 됐다는 효능감만 건지기 십상이다. 수많은 한 줄 평이 ‘주수인 파이팅’으로 귀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구소녀>의 결말은 수인과 관객이 고대했던 결말에 오차 없이 다다르지만, 장밋빛 미래만을 예고하지는 않는다. 이 지점은 <야구소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한 영화’가 되는 주요 지점이다. 수인은 또다시 힘들고, 억울하고, 괴로울 것임을 예고한다. 누구나, 언제나 매번 힘들겠지만. 러닝타임 내내 과거를 쌓아 올린 수인과 수인의 과거를 목격한 관객은. 미래에 닥칠 ‘선택의 순간’서 덜 불안히 버텨낼 수 있을 거 같다.


나른하고 공허한 덕에 침대에 눕고 싶겠지만, 담배나 빨고 싶겠지만. 수인처럼 일단 마운드에 서자. 수인 말대로 야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여자건 남자건 기교파건 파이어볼러건 강속구 투수건 너클볼 투수건. 그건 상관없다. 그건 단점도 장점도 아니다. 일단 다시 마운드에 서자. 우리는 그다음 결과를 책임지면 된다.

 

개막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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