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안준호로 D.P.가 하고 싶은 말

넷플릭스 <D.P.2>(2023)

by 윤제경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이 문장에 감명받지 않은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간다. 꼬추가 달렸다는 이유로 약 2년간 그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똥도 싸야 한다. ‘민족의 아픔’ 수준으로까지 PTSD를 선사한 군대 이야기는 그래서 잊을 수 없다. <D.P.> 시리즈는 한국 군대라는 익숙한 배경 아래 군인을 잡는 군인이라는 신선함을 덧붙였다. 삼겹살과 소주. 치킨과 맥주. 파전과 막걸리급에 준하는 이 메가톤급 조합에 시즌1은 화끈한 반응을 얻었고, 시즌2는 의문을 남겼다.


안준호는 폐급인가?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자.

안준호는 폐급이 맞다. 신병이 선임에 개기고, 선임을 패고, 항명도 서슴지 않는다. 탈영까지. 와, 대한민국 육군 역사에 이런 전대미문 폐급이 있던가. 것까진 모르겠지만 ‘안준호가 우리 부대였다면’이라는 상상은 확실히 두통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왜 폐급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D.P.>는 시사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판타지다. 현실에 안준호는 없다. 한호열, 박범구도 마찬가지. 만약 안준호가 폐급이 아니었다면 <D.P.>는 나오지 못했을 웹툰이고 드라마다. 착즙 백프로의 리얼한 연출을 기대했다면 KBS <다큐멘터리 3일>이 더 나은 편일 거다.


‘경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차마 잊을 수 없어 어렵게 꺼내놓은 고백이다.’

<D.P.> 원작자 김보통이 웹툰집을 출간할 적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안준호는 어쩌면 원작자의 고백이 자백이 아닌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설정된 캐릭터일지 모른다. 그때 거기서 당연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들을 몸소 시연하며. 폐급 안준호라는 판타지가 아니라면 시작될 수도, 전개될 수도 없었을 이야기를 시작하고 전개한다.


시리즈 후반부로 갈수록 안준호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움직인다. 모든 움직임이 필사적이다. 반면 드라마는 ‘내일’을 말하기 위해 12부작을 달려온 것만 같다. 여기서 ‘내일’은 특별한 게 아니다. 아무개가 아무개를 때리지 않는. 아무개들이 아무개를 따돌리지 않는. 아무개가 죽지 않는. 다분히 상식적인 그런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건 네가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에 “그러면 누가 해야 합니까. 어쩔 수 없는 거면 아무도. 그걸 누가 감당해야 합니까”라며 옳다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정말 아이러니한 건. 밖에서 보면 영웅도 이런 영웅이 없는데, 안에서 보면 대역죄인도 이런 대역죄인이 없다. 안준호는 폐급을 자처한다.


군대는 인간의 치부를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장이다.

’여기는 원래 그런 데니까‘라는 대의명분은 모든 부조리에 당위를 제공한다. 클린병영 같은 제도적 장치는 상대성을 거쳐, 때로는 ’옛날에 비하면 이건 뭐‘ 같은 새로운 암묵적 기준을 제시하거나 때로는 ’나만 쓰레기야?‘ 같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결정적으로 그곳에서의 만행은 익명성을 담보한다. ’이제는 좋아졌다‘라는 광고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밖에 사람들을 속인다. 그러면 진짜 뭔가 달라진 거 같다. 군대도 달라지긴 달라진다. 놀랍게도 사실이다.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견제와 가장 끔찍한 수준의 사건사고를 거치면 그때 달라진다. 그런데 말이다. 달라진 건 맞는데 좋아진지는 모르겠다는 거다. 부조리는 언제나 새롭게 개정되거나 탄생하거나 부활한다. 여전히 이 거지 같은 장소에서 이 거지 같은 부조리를 견디며 이 거지 같은 인간들과 똥을 쌀 때마저 붙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남은 디데이만큼이나 잔혹하다.


바꾸고 싶다. 목소리를 내봤자 조롱당한다. 모두가 한통속이다. 살아남고 싶다. 섞이고 싶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내가 네가 되느냐, 네가 내가 되느냐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전자다.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 후자는 폐급 안준호가 되는 거다. 만약 <D.P.>가 착즙 백프로의 리얼 연출이었다면 안준호는 그가 경멸하던 자들의 모습으로 변모했을 거다. 적어도 ’모두가 너처럼 할 수는 없어‘라는 허기영이나 ’군대는 안바뀐다‘는 조석봉의 모습을 띄었을 거다. 그래야 네오리얼리즘이다. 그래서 폐급 안준호가 없었다면 <D.P.>는 나오지 못했을 웹툰이고 드라마다. 그래서 <D.P.>는 판타지다.


이 판타지 드라마에도 네오리얼리즘 연출은 존재한다. 마지막 시퀀스다.

전역 후 민간인 황장수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너무 평범하다. 그 평범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많은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 혹시 저 사람이, 저 아저씨가, 네가, 내가 걔가 아닐까. 최소한 그런 의문에 당당해지기 위해 우리는 안준호가 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조롱당하고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좋게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 정말 걔가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내가 목격한 것만큼은 바로 잡으려는 노력, 그런 노력이라도 있어야 우리는 내일을 만들 수 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면, 그게 폐급인 겁니까?“

우리는 폐급이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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