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씨 표류기-모로 가도 뉴욕만 가면 된다는 사람들에게

영화 <터미널> (2004)/스티븐 스필버그

by 윤제경

뉴욕 JFK 공항에 표류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빅터 나보르스키. “비즈니스인가요? 관강인가요?” 1초 만에 나와야 할 대답을 못하는 이 남자는 입국 수속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 뭔가 수상해’ 공항 직원이 짬밥으로 굴린 통밥은 정확하다. 그는 고국에서 내전이 일어나 돌아가지도, 나가지도 못해 공항에 발이 묶인다. 공항이 일종의 DMZ가 된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항 한가운데서 면도를 하는 면모를 보이며, ‘나 이상한 사람이오’ 광고라도 하는 듯한 이 남자는 천하태평하다.


뉴욕 JFK 공항 67번 탑승구. 여기가 그의 주소지다. ’빨리 보내줘, 미국이라고 이래도 돼?‘ 식의 진상 짓이라도 해야 될 판에 그는 다른 종류로 진상짓을 시작한다. 그는 빠르게 이곳에 적응한다. 서점에 가 ’브로드웨이‘에 관한 책을 읽고, 카트를 대신 회수해 주는 대신 동전을 모아 버거킹 세트를 사 먹는 창조경제도 보여준다. 공항에서 이를 제지하나 곧바로 새 일자리를 찾는다. 스카웃돼 이직도 한다. 이제는 미 국토안토부 국장보다 많이 번다. 친구는 물론이고 짝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심지어 잘 된다. 좋게 말해 표류지 그냥 노숙인데, 그는 이곳에 완벽히 적응하고 또 이곳에서 삶이 꽤 만족스러워 보인다. 공항은 그에게 작은 마을이 된다. 알아서 탈출하길 바랬던 공항 입장에서는 진상도 이런 개진상이 없다.

영화 시작 때 들었던 의심은 영화가 전개될수록 확신으로 이어진다. 빅터는 바보다. 그는 우리의 바보 같은 모습들만을 짜깁기 해놓은 사람인 것만 같다. 필요 이상으로 멍청한 모습을 보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공감대가 느껴진다.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여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정장 한 벌에 탕진하기도 한다. 자신이 고급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그녀에 선사하기 위해 어설픈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꾸리기도 한다. 그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맛있는 밥을 위해서라는 1차원적 이유를 벗어나지 않는다.

바보 같다는 의미에는 선함이라는 포괄적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빅터의 경우가 그렇다. <터미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짝사랑하는 여자 미모도 아닌, 노숙 중에 먹는 버거킹 세트 맛도 아닌 ‘정직함’이다. 그는 편법이라고는 쓸 줄을 모른다. 그가 뉴욕에 온 이유는 설명하자면 긴데, 옛날 옛날에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재즈 가수들에 편지를 썼단다. 대부분 사인을 해 답장을 보냈는데, 뉴욕에 사는 베니 골슨이라는 양반만 답이 없다더라. 그래서 그 양반 싸인을 받으러 뉴욕에 온 거다. 여러모로 독사 같은 인간이다. 명확한 목적이 있음에도, 제발 좀 나갔으면 하는 공항 고위부의 계략에도 그는 꿋꿋하다. 영화 중반부까지 ‘여기가 좋아서’라 착각이 들다가도 영화가 끝난 뒤 그가 편법을 쓰지 않고 뉴욕 땅을 밟은 것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터는 마침내 뉴욕 땅을 밟는다. 9개월 만이다. 9개월? 9개월이라고 했나? 9개월이면 프로야구가 한 시즌을 치르고, 임신을 했다면 수정부터 출산까지 걸릴 시간이다. 왜 하필 9개월이냐 하면 크로코지아(빅터의 고국) 내전이 그때 끝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법적으로 자유다. 공항 사람들과 찐하게 파티도 벌인다. 하필 짝사랑하던 그녀가 그날 섹스가 끝내준다던 내연남에게 돌아간 것만 빼면 완벽한 날이다. 썅년. 들어올 때는 불청객에 웃음거리였던 그가 월드스타 입국에 준하는 환호를 받으며 출구 앞에 선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나가면 그건 영화가 아니지. 빅터에 쌓인 게 많았던 국장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류의 논리로 뉴욕행 대신 곧바로 귀국하도록 계략을 짠다.


그렇다고 뉴욕 땅을 못 밟는다면, 그것 또한 영화가 아니지. 빅터를 오랫동안 지켜봐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선한 사람인지를 아는 직원은 국장에 항명한다. 밖이 춥다며 옷까지 벗어주어 출구를 열어준다. 빅터는 곧바로 택시를 잡고, 베니 골슨이 공연하는 재즈바로 향한다. 거기서 재즈 음상을 감상하고 감격의 눈시울을 붉힌다. 그토록 바라던 사인도 받아낸 뒤 곧바로 재즈바를 나온다. 다시 택시를 잡고,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집에 갑시다”.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바보라 생각했던 빅터가 영화가 끝난 뒤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더 빠르게, 더 싸게 굴러가는 데만 혈안 된 세상 속 빅터가 살포한 정직함은 많은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훨씬 느리고 훨씬 비싸게 굴러갈지라도 놓쳐선 안되었을 소중한 것들. 또 그 소중한 것들을 놓쳐 혈안이 된 지금. 그런 순간이 모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 ‘모로 가도 뉴욕만 가면 된다’는 우리에 <터미널>은 교훈 같은 영화다. <터미널>이 근사한 지점은 곧 빅터의 정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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