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려버릴 뻔한 영화

영화<오펜하이머>(2023) 크리스토퍼 놀란

by 윤제경

<오펜하이머>의 러닝타임은 3시간이 넘는다. ‘내 방광이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한 자기객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같이 간 썸녀/썸남 미모에 따라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바뀌는 것만큼 이 문제에 따라 감상은 완전히 바뀔 테니까. 결론적으로 이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휴.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 고민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놀란 영화는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다. <인터스텔라> 개봉 당시 과학 이야기를 알아야 하냐 몰라도 되냐부터 그러니까 한 번만 봐도 이해되더라 와 그러니까 4번은 봐야 이해되더라로 분분했다. <오펜하이머>가 개봉된 지금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실존인물로 핵무기 개발자다. 핵무기를 실제로 만들어낸 최초의 개발자니 이건 원작자라 해야 하나 창립자라 해야 하나 아무튼. 오박사는 유럽 유학생 시절 양자역학 논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어떤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고, 어쩌면 인간적인 어쩌면 비인간적인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핵을 개발하고, 성공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뭐야 이게? 싶지만 놀란 감독이 하는 이야기는 이토록 쉽다. 그러니까 양자역학 몰라도 영화에 빠져드는 데 큰 결격사유는 없다. 심지어 오박사 연대기는 매우 친절하고 자연스레 전개된다.


그러니까 <오펜하이머>는 결국 오박사 연대기 영화라 봐도 좋다. 그를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오게 된 건, 그가 엄청난 위인이나 악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천재였지만 순수하고도 순진했다. 핵무기 개발도 자아성취를 위함이었지 정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죄책감에 빠지고 그럼에도 환호하는 이들에 기대 충족을 위해 가식을 떨어야만 하기도 한다. 이렇게만 끝나도 해피엔딩일 텐데 섹스를 했던 여자들이 하나같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점과 어떤 남자에 큰 원한을 사 ‘당신이 애국자인지 의심된다’며 말년에 발목을 잡힌다. 놀란 감독은 승승장구였을 것만 같은 어떤 핵무기 개발자 인생이 이렇게 고단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웅장한 음악이 방광을 자극하고, 오박사가 실험하고자 했던 게 정녕 핵폭탄이었는지 내 방광인지 헷갈리고 또 원망스러울 즈음 영화는 이미 후반부로 다다르고 있다. 놀란 감독은 어쩌면 조여오는 방광을 수단으로 장시간 관객의 집중을 유도했는지 모르겠다. <오펜하이머>는 길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오박사의 표정 변화는 영화가 어떤 결말로 다다를지를 보여준다.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에 택하고 부여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동시에 말이다.


아무튼, 그러니까. <오펜하이머>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방광의 성능입니다. 명심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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