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에게 서울역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가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많아 봐야 세 번이고, 그나마도 기차 시간에 쫓겨 오래 있을 수 없었던 우리 가족에게 서울역은 오래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나는 매년 외갓집인 부산에 놀러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 남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 주시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푸른 바다와 소금기 어린 공기, 맛있는 음식과 목청 좋은 외갓집의 강아지까지. 내게 있어 부산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고, 부산에 가기 위해 꼭 거치던 서울역도 자연히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서울역은 굉장히 크고 넓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작은 건물은 아니지만, 체구가 작은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거인들이 사는 저택처럼 보였으리라. 바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반짝이는 간판을 단 가게도, 다른 층이나 건물로 통하는 복잡한 길들도 모두 생소했다. 지금도 서울역의 구조를 잘 모르는 만큼, 어린 내가 보는 서울역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곳저곳을 궁금해하던 우리 남매 때문에 엄마가 진땀을 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서울역 2층에 올라가면 무엇이 있는지 항상 궁금해했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2층에 올라가볼 일도 많이 생겼지만, 그전에는 아이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 보였을 것이다. 서울역의 에스컬레이터가 향하는 길은 언제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미스터리였다. 실제로 올라가볼 즈음에는 넘치던 호기심이 사그라든 이후라, 어린 시절 염원하던 대모험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것들이 있다. 부산에 갈 때면 언제나 챙겨 가던 캐리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그렇게 좋았다. 높은 천장도 좋았고, 그곳의 공기도 좋았다. 거기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늘어서 있던 각종 가게들이 풍기던 맛있는 냄새도 한몫했다.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추억은 먹는 데에서 오지 않던가. 기차를 탑승하는 플랫폼에서 운영되던 스토리웨이 편의점의 간식들, 열차 복도를 따라 오가는 먹거리 카트, 카트에서 팔던 싸구려 소시지, 가격은 있지만 정말 맛있었던 도시락.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기차 도시락을 서울역 새우볶음밥이 대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여행의 추억 중 하나로 계란을 이야기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기차에서 먹던 소시지가 지배한다. 어쩌다 배가 고프지 않은 날에도, 멀미가 나는 날에도 나는 꾸준히 소시지를 요구했다. 한 팩에 대여섯 개가 든 손가락만 한 갈색의 소시지는 KTX 열차를 타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동생과 소시지를 나눠 먹었고, 내게 주어진 것을 야금야금 아껴 먹으며 부산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언제나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던 좌석도 추억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우리 가족 네 식구에게 안성맞춤이었던 KTX의 동반석. 어린 나는 좌석번호의 존재를 알지 못해 두 명씩 마주 보게 설계된 4인 동반석만 보면 여기가 내 자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정정해 준 자리에 앉을 때면 나는 창가 자리로 들어가곤 했다. 소시지를 먹는 것만큼이나 재밌는 것이 창밖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창가에 앉아 기차가 강을 건너고 도시를 벗어나 점점 한적한 풍경 사이로 녹아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들뜬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종종 잠들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도 창밖 구경을 좋아하는 건 그때의 기억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남매는 아빠를 닮아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어린 시절 KTX에서의 추억에는 언제나 닌텐도가 함께했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받은 콘솔 게임기였다. 일곱 살의 나는 하늘색, 여섯 살이던 동생은 하얀색 닌텐도를 들고 게임에 몰두하곤 했다. 엄마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시절 우리 남매에게는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 풍경과 기차가 선로를 따라 달리며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만큼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면 언제나 외할머니가 마중을 나와 주셨다. 외할머니는 늘 승강장 출구 근처, 부산역 2층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통로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마침 그곳은 화장실 바로 앞이었던지라, 외할머니의 격한 환영을 받고 나면 화장실에서 여행길에 쌓인 걸 비우고 이동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러고 나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주차장에 세워 두신 차를 타러 갔는데, 외할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강렬한 빨간색의 승용차를 몰고 다니신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정한 '힙함'의 선두주자가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차에 타면 외할아버지가 선곡한 '아 옛날이여'가 흘러나왔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즈음에는 할머니가 직접 선곡하신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같은 패턴이지만 언제나 다른 즐거움을 주던 어린 시절의 여행 추억은 늘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물세 살이 된 지금, 나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교의 편입생이 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보니 자연히 기숙사를 택했지만, 운 좋게도 잘 짜인 시간표 덕에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작년까지만 해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만 방문할 수 있었던 특별한 서울역은 이제 추억이 아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스물세 살이 되어 밟는 서울역에는 더 이상 어린 시절 느끼던 즐거움과 설렘이 없다. 어린 시절의 엄마처럼 기차 시간에 쫓겨 이곳저곳을 궁금해할 새도 없이 급히 짐을 들고 승강장을 찾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학생 때 즐겨 먹었던 서울역 포장 전문 부스들의 새우볶음밥도 사라졌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ITX나 무궁화호로 열차가 바뀌며 복도를 오가던 간식 카트도 사라졌다. 때문에 나는 매주 기숙사로 내려가는 저녁 기차를 타기 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생각으로 서울역 유부초밥과 주먹밥을 구매한다. 그야말로 여행이라는 기분 하나 들지 않는 딱딱한 일상 루틴이다.
그러다 문득, 서울역 문턱을 넘어 건물로 들어서며 높은 천장을 마주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잠시 걸음을 늦추고 늘 오가던 길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감회에 젖는 한편, 어린 시절의 낭만과 행복은 어디로 가고 칙칙한 사회인만이 남았나 하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했던 장소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고 좋아했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 때, 나는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기억을 더듬다 보면 그날의 추억이 여전히 나의 발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서울역의 추억은 그렇게 어른이 된 나의 서울역을 만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를 떠나 더 이상 서울역에 자주 방문할 수 없게 되면 지금의 생활 또한 추억의 일부가 되어 사회인인 나의 서울역을 만들게 될 것이다. 고되고 지치는 일상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날의 내가 지금을 어떻게 추억할지 상상하며 위안을 얻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