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실전기(6) 한번에 되는 일은 없어요.
정말 신기한 것 같다. 이곳에서는 가전들이 절대 한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인터넷 모두 설치기사분이 오셨다 다시 가셨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원래 그런 일이 흔한건가?
시작은 인터넷이었어다. 그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어지간한 시골에 모두 설치가능하다는 접시인터넷(스카이@@)이 1차로 설치 불가 판정을 받고 돌아갔다. K@ 전신주가 근처에 있길래 이곳에 문의하니 역시나 공사비 400을 부르고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접시 인터넷은 인터넷 회선 2개 이상 가능성을 언급하시기에 인터넷을 포기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포켓인터넷으로 사용 중이다. 4만원 정도 되는 돈이라 보통 인터넷 요금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고 속도 또한 느린게 눈에 보일 정도이지만 무제한이라는 장점이 데이터사용의 부담을 줄이니까 괜찮았다.
인터넷 동냥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게 어디며 집에서 인터넷이 된다는게 어딘가. 아주 감지덕지할 일이다. 여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학교에서 알아봐주셔서 새로 인터넷을 설치하기로 했다. 케이블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도 자사 부담으로. 기존에 쓰고 있던 통신사였는데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다행)
그 다음은 냉장고. 배송과정에서 뒷판 모서리가 찌그러져 도착했다. 스티로폼과 박스에 꽁꽁 싸여서 배달기사들이 가져오는 냉장고가 그렇게 망가져서 오는 모습에도 놀랐고, 냉장고 배송일정을 예상해 그에 맞춰 장을 봐 온 물건들이 계속 실온에 보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심각했다. 설치기사분들이 죄송하다며 돌아가는데 새 제품 올때까지 찌그러진 냉장고라도 임시로 쓰면 안되냐는 말이 정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가전이 생각보다 바로바로 출고가 안되는터라 돌아간 냉장고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막막했다. 그렇게 설치기사분들이 돌아가고 저는 급한대로 바깥쪽 창문을 열고 샷시 사이에 물건을 임시로 보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행히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냉장고가 무사히 도착했어요. 생각보다 물건이 많이 안들어가서 매주 장을 봐와도 한주를 버티기가 간당간당한다. 결코 냉장고에서 썩어 버리는 물건을 없을거라는 긍정의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번엔 세탁기. 세탁기는 일단 설치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지으셨다는 설비팀이 오셔서 수전과 배수구를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더 지체됐다. 수전도 놓고 배수구도 생겼으니 세탁기만 오면 되겠구나 했는데 이런, 여기는 한번에 안되는 곳이라는 걸 이때까지도 인식하지 못한 나였다. 배송된 세탁기가 빌트인인데다가(윗판이 철로 돼 있어서 싱크대 상판이 덮혀야 한다) 드럼은 전기판넬 바닥에서 진동이 너무 심해서 막 움직일수도 있고 집 전체가 울릴 거라고 주문 취소하고 이왕이면 통돌이로 재주문을 했다. 그렇게 세탁기는 구경도 못하고 설치기사분 얼굴만 보고 돌아갔. 그리고 한주가 흘러 다행히 재주문한 통돌이가 왔다.
마지막으로 냉난방기. 뭐 이젠 예상했다. 한번에 안된다는거. 이번엔 설치팀도 사전 점검차 먼저 오셨다. 설치는 가능한 곳인지를 먼저 봐야 한단다. 업체형 냉난방기라 가정에서 쓰는 에어컨 하고는 많이 달랐다. 내부에 전선과 배관 및 실외기 설치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외기에 연결할 외부 전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미 선을 빼놓는 작업을 하셨는데 그 선이 또 너무 얇아서 교체해야 한다. 네~네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요. 한번에 되면 어색하니까. 그렇고 냉난방기 설치팀은 가셨고 전선교체는 현재 감감무소식이다. 뭐 난방은 이제 괜찮고 냉방 역시 아직 여름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 그 전에 되겠지 하는 맘으로 기다린다.
브런치에 에피소드로 쓰라고 이렇게 내게 많은 일들을 주니 어찌나 감사한지. 오늘도 한번에 되지 않은 가전들 덕에 한 꼭지의 글을 남길 수 있었다. 처음엔 한번에 안되는 일이 되게 짜증나고 뭐 이러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언제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있으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에서 너무 불편하지 않냐고 걱정해주신다. 이제는 뭐 들어올 기본 가전은 다 왔고 인터넷 문제도 한주정도 지나면 해결된 것 같으니 마음에 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