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실전기(12) 외지인이 아닌 면민으로 살아남기
지난 주말 동네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00면민의 날 및 화합 한마당'
전날부터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 천막이 세워졌다. 각각 마을의 이름을 달고 늘어선 천막이 대학 축제를 방불케 했다. 서울에서도 종종 동단위 주민잔치를 하곤 했는데 잔치의 주축이 부녀회나 동네어르신이라 '아, 행사를 하는구나!' 정도만 인식하고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면민의 날은 이장님께서 전날 집까지 찾아와 꼭 오라며 초대를 해주셨다. 행사 당일 마을 천막을 찾았다. 전 이장님이신 어르신께서 그늘이 진 시원한 자리를 안내해주시고 치킨, 떡, 음료, 과일 등 음식을 챙겨주셨다. 현 이장님은 우리의 이름이 적힌 추첨권을 주셨다. 1등이 송아지라며 행운도 빌어주셨다. 아이들은 강당을 오가며 얼굴에 땟구정물이 들만큼 열심히 놀았다.
메인 무대에선 기념사, 축사, 체육대회, 노래자랑, 공연 등이 쉼없이 이어졌다. 무대행사의 마지막 추첨의 기회. 앞서 세워져있던 소 등신대에 기운을 달라고 빌었는데 통했나보다. 자그마한 냉장고 1대와 TV 당첨자에 아이들이 이름이 연이어 불렸다. 큰 아이는 막춤으로 자전거도 추가로 받고 마을 추첨에서는 프라이팬 한개를 받았다. 양손으로도 다 품을 수 없는 선물을 한가득 싣고 집으로 왔다. 선물을 죄다 가져가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기쁨을 너무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런 적은 저도 처음이라... 원래 소소한 선물들을 종종 뽑히고는 했는데...)
이곳은 인심이 좋다. 옆집 할머니도 매일 산책을 오가시며 따온 쑥, 쪽파, 무 등을 보행유모차나 주머니에서 꺼내 조금씩 쥐어주신다. 커지지 않고 매일 고만고만한 상태의 상추를 유심히 보시며 이래서는 상추가 더디게 자란다며 할아버지 몰래 비료를 한바가지 챙겨주셨다. 거름이랑 비료를 옆에 살살 뿌려줘야 자란다고.(학교 다닐때 식물은 해, 물, 땅만 있음 자란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거름과 비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사차 회관에 음료와 빵을 가지고 간 날도 애들 먹이지 뭐 이런걸 사오냐고 그냥 오라고 하셨다.
전라북도는 농촌유학 활성화를 위해 거주시설 조성사업을 실시한다. 30억을 들여 20호의 집을 짓는다고. 커뮤니티센터 등도 지어 유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고 들었다. 참 불필요한 일이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유학생을 위한 거주시설을 따로 짓는다면 농촌유학생은 유학기간동안 영원히 외지인으로 살다 외지인으로 돌아가는 삶을 하게 되지 않을까? 서울에서 농촌으로 오는 사람들이 서울에 집이 없어서 오는건 아닌데 말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마을내 빈집을 수리해서 제공하면 마을에 스며드는 주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농촌유학으로 함께 오는 부모는 귀농귀촌사업과 연계해 영농교육 등을 시켜주면 자연스레 농촌유학에서 귀농귀촌으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