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실전기(13) 동식물의 이름을 찾아서
철쭉, 도라지꽃, 민들레, 봄까치꽃, 금강초롱꽃... 모두 나에게는 그냥 꽃이었던 아이들이다. 초록색이든, 검은색이든, 붉은색이든 거미는 모두 다 그냥 거미였고, 다리가 여러개 달려 있으면 지네로 통했다. 내게 이름을 갖지 못한 것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물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지나쳤다.
시골에 있으면서 느끼는건 '내가 참 동식물(곤충, 벌레 등)에 무지한 사람이구나'였다. 밭에서 자라는 마늘과 파를 구분할 줄 모르고 고사리가 땅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줄도 모르고 고사리가 자라는 가지를 찾았다. 두릅 가지를 눈 앞에 두고도 땅에서 올라오는 줄 알고 땅만 살폈다. 갓꽃과 유채꽃을 구별하지 못해 만석보 근처 유채꽃 밭을 보며 갓을 왜 저렇게 키우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오히려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동식물의 지식을 배워와 엄마에게 일러주고 있다.
서울에 살며 고사리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것만 봐왔고 명절 상에 올라온 간이 밴 나물로 먹을 줄만 알았다. 두릅은 씁쓸함과 가시 때문에 평소에 사먹을 생각조차 안했다. 그랬던 내가 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쑥 내민 고사리를 톡톡 딴다. 장갑을 끼고 가시로 날을 세우고 있는 두릅의 밑둥을 뚝뚝 끊는다. 고사리는 삶아 찬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바짝 말리고 두릅은 밑둥을 잘라 가시를 쳐내고 살짝 데쳐 직접 만든 초장에 푹 찍어 먹는다. 안먹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두릅의 매력에 빠졌다며 작은 입에 쏙쏙 잘도 집어 먹는다.
여기저기 마구 자라있는 쑥도 딴다. 아직 약을 치는 시기가 아니었던 이른 봄 옆집 할머니께서 쑥을 한움큼 주셨다. 떡을 할 수도 없고 국을 끓이자니 애들이 안먹을것 같고 (평소 쑥떡도 잘 안먹는터라) 어찌할까 고민하다 인터넷을 뒤졌다. 그리고 그나마 제일 만만한 쑥 부침개를 했다. 애들은 안먹으면 부쳐두었다가 다른 엄마들하고 나눠먹어야지 하는 맘으로 열심히 쑥부침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쑥부침개는 엄마들은 냄새도 못맡고 순식간에 아이들 뱃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머무는 집 뒤에는 원래 대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차가 들어올때 꽤 불편하기도 했고 약간의 음침함도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뒤 대나무와 소나무가 사라졌다. 소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대나무는 땅 밑으로 파묻었다. 갑자기 어두운 땅속에 갇힌 대나무는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땅 가장자리로 죽순이 불쑥불쑥 자라고 있다. 비가 오면 키가 커져있고 날이 좋으면 하나 둘 늘어간다. 중식에서 잘린 것만 보던 죽순을 보고 직접 따보기도 했다. 꽤 크다고 생각한 죽순이 막상 겉껍질을 한거풀씩 벗기면 손가락만해지는 사실을 보고 죽순을 더 키워야하는구나 깨닫는다.
텃밭에 상추는 심기전과 다름없는 크기다. 언제쯤 커서 고기 먹을 때 상추를 뜯을까 매일 지켜보고 있다. 너무 지켜봐서 자라지 않는걸까? 옆집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거기 그렇게 두면 뭣이 자란디? 맨 집만 있고 밭에 뭘 키운게 아닌디. 비료랑 거름을 줘야지~." 책에서 배울때 식물은 햇볕, 물, 토양만 있으면 자란다고 했는데. 지식은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 키우는 상추가 아니라 반려상추가 되어 먹을 수 없이 자라라고 물만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께서 조금 주신 비료를 뿌리고 거름도 얻어다 주웠으니 이제 잘자랄까 싶은데 여전히 크지 않는다. 내가 매일 언제 크나 너무 지켜봐서 부담스러운걸까? 크면 따갈까봐 알고 키를 키우지 않는걸까?
애들에게 배우고 동네 어르신들께 배우며 동식물의 이름을 익힌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꽃, 거미, 지네로 부르지 않고 철쭉, 봄까치꽃, 유채꽃, 갓꽃, 돈벌레(그리마), 깡충거미 등 이름으로 불러준다. 이제 너의 이름을 찾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