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상반기 회고: 나아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1년 반 만에 쓰게 된 반기회고

by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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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회고를 쓰지 못했던 이유

사실 그동안 매번 회고와 여러 글을 썼었다.

그러나 그 글 들은 항상 초고 정도의 수준에서 더 이상 수정하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다시 열어보는 일은 없었다.

분명 이전 보다는 글을 조금 더 잘 쓰게 되었는데도 그 글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껏 쓴 글 들은 내가 쓰고싶은 글이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쓰고 게시하는 이유는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실패와 도전으로부터 배운 생각들을 공유하고, 그 생각이 누군가에게 영감이나 에너지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최근 쓴 글들은 대부분이 우울과 혐오로 가득찬 글이었다.

어떤 힘든 시기나 감정으로 시작된 글은 대부분은 쓰여질 수록 그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낼 뿐이었고, 수천자가 넘어가는 긴 글을 남겼음에도 어떠한 메세지도, 끝맺음도 없었다.






1. 이제는 영감을 줄 수 있나요?

아마 아니다. 정도로 대답할 수있을 것 같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기 시작할 즈음부터 시작된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25년 초까지만 해도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처방받은 알약의 숫자와 이직이라는 목표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다시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 갑작스레 무기력,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잦았다. 곧 공황이나 불면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들도 뒤따랐다.

완벽히 회복하고 곧 일상에 복귀할 것 만 같은 기대감에 반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한계에 달해서였을까.

다시 늘어난 알약의 갯수 만큼 힘든 날을 견디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혐오의 꼬리잡기가 계속 되었다.


렇게 찾은 병원에서는 으레 겪는 시기라는 듯, 의사선생님께선 오히려 나아가 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 말 조차 아프게 다가와서 상담 직후에 병원 계단에서 한동안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충격요법이 성공이었는지, 이미 해봤던 여러 시도들을 다시 해보기 시작했다.

의미 있는 일, 완전히 쉬는일.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 혼자 견디는 일.
나를 망가뜨리는 일, 용서하고 다독이는 일.

잠깐 회복된 듯한 일도 있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실패였지만 작은 결론에 도달 할 수 있었다.






2. 이제는 회복을 꿈꾸지 않으려고.

빨리 회복하고 싶었다.

힘들다, 지쳤다와 같은 핑계로 공부도 운동도, 또 그 외에 여러 일 들도 계속 미뤄오는 내 자신이 싫었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만해도 잘 해냈으니까, 다시 그 전 만큼 회복해서 새로운 여러 일을 해 나가고 싶었다.

이제는 이전보다 나이도, 경험도 쌓인 만큼 어떠한 결과를 더 내고 싶었던 탓일까, 그래서 더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조바심도 났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결국 나를 더 갉아먹고 목을 조를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빨리 회복하겠다는 다짐 대신,

이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울과의 공존을 택하기로 했다.






3. 하반기에는

정량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기로 했다.

굳이 꼽자면 운동이나 공부, 개인 작업 등 여러 일을 조금씩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목표로써 삼지는 않을 것이다. 괜히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를 또 혐오할 것 같아서였다.

대신 내년에는 정량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위한 준비를 하는 나머지 반기가 될 것 같다.

적당한 시도와 적당한 휴식,

아직은 조금 더 도피하기도 하고, 또 아주 조금은 문제를 직면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 또한 이제야 얻은 아주 작은 결론이기 떄문에 분명 마음 먹은대로 잘 공존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이 결론을 좀 더 믿을 수 있는 단단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4. 끝으로: 나에게, 또 당신에게

이 글 역시 어떠한 영감이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는 빨리 회복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나와 다른 과정이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소통 끝에 내린 결론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누군가 어떠한 부분이 강하거나 약하게 태어나듯, 나처럼 조금 더 쉽게 우울을 겪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특히 나보다 훨씬 더 멋진, 대단한 사람들 또한 갑작스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들 모두 빨리 일상의 회복을 간절히 꿈꾸며 회복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지만 오히려 그 노력들이 좌절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니, 회복에 정말 지쳤다면 그냥 그 우울이라는 녀석과 같이 잠깐 지내기로 하는것도 괜찮다는 말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또 나에게 건네고 싶다.

회복하려고 발버둥 치는 당신이기에, 이미 그 상태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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