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과일바구니

과일을 먹지 못하는 이유

by 파이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선물을 주셨다.

푸짐한 과일 바구니와 배달앱 쿠폰.

망고와 망고스틴, 샤인머스켓 등 평소라면 우리 집에서는 구경도 못할 과일들이 한가득이었다.

과일들은 그대로 냉장고의 과일칸의 가장 잘 보이는 곳 전부를 차지했다.

그 이후로 근 한 달간,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던 귤 외에는 과일바구니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날씨가 꽤 더워질 만큼 시간이 흘러 망고가 상하기 직전 바나나처럼 색이 물들때 즈음, 굳건하던 과일바구니의 균형이 깨졌다.

껍질 뿐 만 아니라 속 살 까지 거멓게 멍이 든 망고는 어쩐지 호박과 같은, 기대와는 먼 맛이었다.

그 뒤로도 다른 과일들 역시 노란 비닐 봉투에 들어가기 직전에 겨우 냉장고 밖으로 나와 맛을 볼 뿐이었다.




과일을 싫어하진 않았다.

어릴 적 부터 좋아하는 과일은 딱히 없었지만 할머니가 썰어주시는 과일은 종종 먹었었다.

자취를 시작했을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과일을 직접 사 보면 꽤 비싸다는 것을 그제서야 체감할수 있어서, 그 돈이면 고기를 먹지…같은 생각을 하며 멀쩡한 과일은 거의 사 먹지 않았다.

그래도 이따금 천원, 이 천원에 한봉지를 가득 받을 수 있던 낙과들은 종종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 마저도 혼자서는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절반은 잼과 같은 요리 재료로 쓰였었다.

그렇게 자취생에겐 과일은 사치품 처럼 인식되기 시작했고

나와 과일도 그렇게 접할 기회가 서서히 줄었던 것 같다.




삶에는 많은 습관과 관성이 있다.

근데 그게 과일에도 적용될 줄 몰랐다.

몇 년간 멀리한 탓에 선물 받은 과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겨우 음식물 쓰레기 신세를 면할 정도만 했다.

또 그마저도 지난 몇 년간 먹었던 과일은 횟수가 너무 적어서 인지, 과일이라면 떠오르는 몇 가지 사연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 거멓게, 과일이라고 부를 수 없을 때 까지 손대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단단한 참외와 사과, 망고스틴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과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과일을 먹을 때의 감정 또한 수분감을 너무 잃었거나 물러져 있는 등,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든 냉장고가, 과일바구니가 비워지듯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는 관성과 기억도 비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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