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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진 May 22. 2023

우울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

샬롯웰스, 애프터썬(2022) 



<디 아워스>,<멜랑콜리아> 등 우울을 다룬 영화들은 많고 그만큼 명작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앞의 두 영화도 명작임이 분명하지만 애프터썬은 그와 조금 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 본인이 겪고 있는 우울보다도 타인, 주인공의 아버지가 겪었던 우울을 되짚는 과정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사람의 우울이 이토록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뒤섞인 따뜻함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캠코더로 촬영된 어떤 장면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방금까지 유쾌하던 캘럼은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속에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이후 암전, 그리고 춤을 추는 사람들 속 한 여성이 서 있다. 우리는 그 여성이 성인이 된 소피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되감기 되는 캠코더. 영화는 통째로 소피의 플래식과 캠코더 녹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주 간혹 성인인 소피와 심상이 교차된다. 되감기 되는 캠코더는 마치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듯 거슬러 올라가고 어느 지점을 찾으려 자취를 더듬는 듯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버지와 보낸 터키여행의 투어버스 안.


필름 속에 담긴 터키의 경관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영화는 내내 불안과 우울이 깔려 보는 이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소피의 아버지는


영화는 설명이나 많은 대사가 없지만 관객들이 유추할 수 있도록 곳곳에 흔적을 남겨두었다. 아마 소피의 아버지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현재는 이혼해서 가끔씩만 소피를 만날 수 있고, 또 카페사업은 망했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이혼 후 사귀던 애인과는 헤어졌고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유추이고 관객에게 명확하게 드러낸 것은 없다. 소피와 똑같이 우리는 그저 전해보았을 뿐이고 완전하게 아는 건 없다. 이 영화는 전체가 소피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영화 내내 우리가 캘럼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뭔가 우울해 보이는 그 인상과 사소하고 작은 일들 때문이다. 등장부터 이미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캘럼은 아픈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다친 상태인 그는 어쩌면 자신이 다친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부러져있었다는 팔처럼 그의 마음이 병든 이유로 어떠한 원인 하나를 꼽을 수 없다. 영화에서 언급된 불우한 어린 시절, 이혼, 사업의 실패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여행 중에도 이런 아주 사소한 불행은 내내 관객들을 불안하게 한다. 잘못 예약된 숙소부터 깁스를 풀다 상처 난 팔과 쉽게 벗겨지지 않는 수영복 등. 우울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커다란 상실보다도 일상 속 자잘한 불편과 어긋남이 쌓이고 쌓여 파도처럼 덮치는 게 우울이다. 



"괜찮아?"
"모르겠어, 그냥... 약간 우울한 거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몰라, 그런 기분 있잖아. 그냥... 아주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지치고 멍하데 뼈들이 제대로 안 움직이는 느낌. 몸에 힘이 없고 그냥 다 쳐져서 가라앉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말이야."



소피의 말을 들은 캘럼의 표정은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모습 중 하나였다. 폴 메스칼 배우의 표정연기는 영화 내내 관객의 감정을 자극했지만 특히나 이런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에서 더욱 그 빛을 내는 듯하다. 


침대에 누워 이야기하는 소피의 말을 듣는 캘럼은 자신의 감정을 들킨 듯한, 혹은 뜻하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듯한 충격 어린 표정이다. 이 복잡하고 파괴적인 말은 캘럼의 감정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영화 내내 사랑하는 딸과 즐거운 시간을 지내지만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존재하는 현실과 어린 시절, 그 외 복잡한 감정들이 짓누르는 치열한 내면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반면 우울은 소피에게 조금 다른 요소로 작용한다. 성인인 캘럼에게는 죽음으로 향하는 이유가 되지만 소피에게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청소년기 사춘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우울감을 배우고 극복하는 법도 배운다. 어린 시절의 적당한 우울감은 성장의 요소로 작용한다. 이제 막 성(性)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또래보다 많은 나이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잔뜩 놀고 난 후에는 공허함과 비슷한 미묘한 감정도 느낀다. 성장을 할 때 우린 몸만 자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각들을 비롯해 뭐라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감정들을 습득하게 된다. 




캠코더 속 기록과 감정이 만들어낸 기억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라는 말처럼 영화 속 소피와 캘럼의 여행은 캠코더로 녹화된 기록들과 소피가 떠올리는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시리게 푸른 바다나, 나른한 햇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속 색색의 패러글라이더.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워진 터키의 풍경은 실제 존재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소피의 기억이 덧칠해져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캘럼의 우울을 어른이 된 소피가 이해하게 되어 아름답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캠코더엔 기록되지 않은 캘럼의 모습은 소피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기억은 오랜 세월 동안 수정되고 다시 기억되어 영화 속의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캠코더 속엔 어린 소피가 알 수 없었던 캘럼을, 다른 장면들에는 현재의 소피가 이제는 이해하게 된 캘럼을 보여주는 듯하다. 때문에 캠코더의 장면만 본다면 이상하고, 조금 부끄럽고, 그렇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유쾌한 아버지는 사실 유약했고, 가끔은 슬픈 표정도 지었으며, 형용할 수 없는 우울을 깊이 내재하고 있기도 한 인물이었다. 



아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된다는 걸 알아둬


하지만 우울만으로 캘럼을 정의하기엔 부족하다. 캘럼은 소피의 아버지다. 호신술을 가르쳐 주거나 수구를 하자며 같이 노는 등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부모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소피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노력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내면의 감정과는 모순되는 것으로 여행 내내 캘럼은 스스로 치열하게 감정과 싸우고 있다. 미숙함으로 소피에겐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자아비판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스스로를 삼키기도 할 것이다.



위의 대사는 무척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게 들린다. 우린 캘럼이 어떤 형태로든 소피의 곁에 있지 못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소피와 싸우고 밤의 파도에 뛰어든 모습처럼 우울에 사로잡힌 캘럼은 언제든 스스로를 내던질 결심과 싸우고 있었다.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와 그 질문의 뒤를 떠올린다. 영화 중반부에서 그 답이 나왔고 후반부에 질문의 뒷부분이 예고된다. 11살 때의 생일을 들려주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딸의 나이와 똑같았던 어린 시절에 그는 일찍이 좌절을 겪었다. 가장 기뻐야 하는 날에 실망과 절망을 겪고 이후의 인생에서도 끊임없이 그러한 것들을 겪어와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과거에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현재의 그에겐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소피가 여행지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귓속말을 해가며 캘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돌아다닌다. 낯선 사람들과 사랑하는 딸에게 받는 생일 축하 노래는 행복한 이야기지만 캘럼의 표정은 알 수 없다. 슬퍼하고 있을지 기뻐하고 있을지. 복잡하고 슬픔과 연민과 고통이 뒤섞인 그 표정은 해를 가리려는 그의 손에 가려져 자세히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날 밤 저녁에 소리 내어 울 정도로 처절한 그 울음소리에 어떤 결심이 그에게 선 것을 알 수 있다. 


11살의 생일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앞으로의 생일이 기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비관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자세한 이야기도 제공하지 않고 우린 추측으로만 내용을 따라가야만 한다. 영화에서 캘럼의 감정이 가장 강렬하게 보이는 이 장면은 소피의 상상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어떤 강렬한 감정과 결심이 그에게 있었음은 알 수 있다. 소피는 아마 자신 몰래 울었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캘럼의 유약한 면을 유추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gRfgpuPNMPk


 Queen (feat.david bowie) - Under Pressure

'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The people on the edge of the night
And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This is our last dance
This is our last dance
This is ourselves


이 노래가 나올 땐 지금까지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다르게 꽤 격정적인 감정연출이 보인다. 밝은 비트와 다르게 무거운 가사는 캘럼의 앞으로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캘럼은 소피를 무척 사랑했지만 압력 속에 결국 마지막을 준비한다. 춤을 추는 동안은 약간의 해방감도 느껴지는 듯하다. 소피를 돌려보내며 캠코더는 끝이 난다. 사랑한다는 말이 마지막으로 내뱉어진다. 이후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그 장면이 소피의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이란 걸 알 수 있다. 소피의 심상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 속 소피는 캘럼을 본다. 어린 소피는 춤을 추기 싫다는 듯 밀어내고 심상 속의 소피 역시 캘럼을 밀쳐낸다. 하지만 어린 소피는 곧 즐겁게 함께 춤을 추고 심상 속의 소피는 사라져 버린 캘럼을 두고 어찌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심상과 어린 시절이 교차하고 두 사람은 헤어져야만 하는 공항에 온다. 마지막 캠코더가 돌아가며 소피는 현실로 돌아온다. 


카펫엔 각자의 이야기가 있듯이 소피에게도, 캘럼에게도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소피는 캘럼의 우울의 원인이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서로 사랑할 순 있었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었다. 캠코더는 캘럼이 소피를 바라보는 애틋함이 담겨있다. 소피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끄지 않은 캠코더는 소피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끝이 난다. 홀로 소파에 앉아서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소피의 모습에서 캘럼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이지만 캘럼은 끝을 향해 문을 닫았고 소피는 그곳에 남았다. 



캘럼을 회상하는 소피의 기억은 애틋하고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캠코더 속 자신의 모습처럼 소피 역시 캘럼을 온전히 사랑으로 바라본다. 누군가가 떠났어도 사랑은 남아있듯이 영화는 애정과 안타까움, 슬픔이 공존한다. 어린 소피는 캘럼과 즐겁게 춤을 추고 그를 안아주었듯이 소피는 아마 캘럼을 안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쉬움이나 연민이 숨어있어 보인다. 압력 속에서도 사랑은 영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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