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하필 그 정보를 믿은 내 잘못이다. 돈에 환장을 한 사람의 말로가 안좋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있었으나 내 인생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기를 돈에 환장을 하다가 고꾸라질 팔자였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약간의 경제적 결핍은 나를 환장하게 했다. 나이키 조던 운동화를 신고있는 친구를 보면 아파트 상가에서 멋지다고 생각해서 산 이름 모를 운동화를 신고 있던 내가 죽도록 싫어졌다. 생일 때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호텔 뷔페를 갔다는 친구 얘기를 들으면 생일 때 아웃백에 가서 감탄하며 빵을 리필해 먹던 내가 창피했고 환멸났다. 나의 부모님은 열심히 일했고 나를 위해 돈을 기꺼이 쓰셨다. 고맙고 눈물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팠다. 나는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이런저런 사이트들을 통해 암호화폐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나는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 뭐든지 해봤다. 암호화폐도 나에게 그런 야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였다. 용돈 조금을 모아 투자를 했던 것이 2년 뒤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는 그 때 경제적 계층의 사다리를 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맛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마치 상류층이 된 것 같았다.
아마 소모임을 만든 게 패착이었겠다. 암호화폐나 주식과 같은 시장에선 정보가 곧 돈이다. 나는 돈을 벌려고 소모임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교류되는 여러가지 정보들 중에서 필터링을 거쳐 옥석을 가려낸 뒤 과감하게 투자를 했다. 꽤나 현명한 선택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사건은 터졌다. 나는 1500만원 가까이를 날렸다. 그리고 그 개새끼를 때렸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자기네 대학교에서 투기,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간 대학생이 있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랴. 나는 퇴학도 당했다. 내 인생은 1년도 안돼서 말그대로 떡락했다. 나의 부모님은 여전히 열심히 일했고 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나란 아들이 갱생하도록. 나란 아들이 부디 현실에 만족할 수 있도록. 나는 진심으로 모든 걸 바꾸고 싶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출소한 날, 집에 곧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마중나오지 않았다. 난 그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곧 집에 들어간다고 연락만 남긴 채, 나는 좀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보고, 문구점에 들어가 불량식품도 구경해보고, 서점에 들어가 책 구경도 좀 했다. 나는 눈물이 났다.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 울어봤다. 내 눈물이 무슨 감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나조차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냥 또륵또륵 눈물이 흐르더니 벤치에 앉아 가방에 고개를 파묻고 울기까지 했다. 그 때 누가 나의 벤치 옆자리에 전단지를 놓고 갔다. 눈물이 잦아들고 그 전단지를 살펴보니 무언가를 바꾸고 싶으면 연구소로 찾아오라는 사이비같은 전단지였다. 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싶지 않았고, 집에 최대한 늦게 가고싶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무언가를 바꾸고 싶었다.
하준오 연구소. 그 곳이 나를 바꿔준 곳이다. 나는 00코인의 수익률이 100%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면 내가 그 시발새끼를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돈도 벌었을 것이고, 우리 부모님을 욕보이게도 안했을 것이다. 내 주변사람들의 불행 세가지가 신경쓰였기는 했지만, 사실 그 연구소가 진짜로 과거를 바꿔줄줄은 몰랐으니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 곳은 나를 바꿔주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었고, 소모임도 계속 유지했고, 그 거짓말쟁이 새끼 말은 걸러 듣는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부모님에게 자율주행 자동차도 선물했다.
그리고 3주 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성준이란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오랜만에 이런 연락이라 미안하다는 서두로 시작하더니, 보이스피싱으로 2천만원을 잃었다고 했다. 본인 주변에서 돈을 가장 잘 버는 사람이 너라서 돈을 빌려달라더니, 울면서 돈을 벌게 해줘도 된다며 제발 본인을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하준오 연구소를 가기 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꽤나 아팠다. 그리고 이게 나의 첫번째 불행이라는 것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