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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꿀이 Feb 08. 2022

<달콤한 노래 by 레일라 슬리마니> 를 읽고나서

감히 오마주해보았습니다

 감명깊게 읽은 <달콤한 노래>,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악마의 재능 부럽다… 그녀가 가진 재능을 수박 겉핥듯이라도 맛보고 싶어서 소설 구성을 차용해보았다. 꽤나 재밌는 작업이었다.

 나에게도 언젠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






  사람이 죽었다. 사람을 살리는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그 곳에 있는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있지만, 죽은 사람을 바라보는 산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을 것이다.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쓰던 조그마한 매트리스에는 핏자국이 낭자해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본인 몸이 간절하게 낫기를 바라며 누워있던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경찰이 덕지덕지 붙여놓은 노란색 스티커로 병실은 통제되어있었다. 살인사건의 가해자인 그 여자는 사람들을 죽인 그 칼로 본인의 가슴을 찔렀다. 병원에서의 자살시도는 살고싶은 의도가 컸던걸까, 죽고싶은 의도가 컸던걸까. 곧장 1층 응급실로 내려간 그녀는 응급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으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그녀의 의도대로 된걸까? 확실한 건 어차피 그녀는 지금 살았더라도 몇 개월 뒤 죽었을 것이다.


HSE

  그녀는 내가 주치의일때도, 내 선임이 주치의일때도 입원했던 환자다. 항암치료로 머리는 대부분이 빠져있고, 혈색은 이미 회색빛에 가까워진지 오래지만 그녀의 행색에서 나는 그녀가 ‘예뻐보이기’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칙칙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지나치게 하얀 피부화장, 그녀가 모르는 사이 고단함에 번져버린 눈화장, 60대가 입기 쉽지 않은 망사양말과 망사 민소매 상의. 그녀는 예쁘지 않았다. 그저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사람같아보였다. 그게 참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환자와 교감하려하지않는다. 고로 그녀와도 교감하지 않았다. 그녀도 나에게 많은걸 원하지 않았다. 치료 시간이 언제인지, 어떤 처방이 들어가는지, 언제 교수님이 회진을 오는지, 그 정도의 정보만 알려줘도 그녀는 항상 웃으며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사실 우리 둘 다 가식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진심없이 웃는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 그녀의 웃음이 나는 약간 소름끼쳤다.

 그녀는 폐암 4기 환자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암덩어리는 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뼈, 머리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막 손주를 봤을 때 의사는 그녀에게 여생이 6개월 남았다고 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보조적 치료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비급여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는 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치료를 해줄 때마다 그 의사에 관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욕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주는 이제 유치원에 간다며 그 의사가 얼마나 헛소리를 한 것인지에 대해 더 강렬하게 얘기했다. 그녀는 본인의 선택 덕분에 본인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녀의 선택만이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녀만이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어딘가 방향성을 잃어버린 듯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암덩어리도, 의사도 아닌 그녀만이 그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 환하게 웃어보였다.


LJA

 할 수 있는거라곤 집안일밖에 없는 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음식점 아르바이트였다. 청소라든지, 요리라든지, 설거지라든지 언제나 했던 일이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아이들은 다 제 살 길을 찾아 떠났고, 무능하고 다정했던 남편은 배달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항상 민폐끼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성격이 어딜 가겠나. 역시나 지지부진한 병원신세를 지려고도 하지않고 사고난지 몇시간 뒤에 생을 마감했다. 나는 강릉에 17평 짜리 아파트와 혼자서 살아가야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강원도 토속 음식을 취급하는 음식점이었다.

 <김순정 감자옹심이> 거기가 내가 일한 음식점 이름이었다. 김순정 사장님은 나와 처음 얘기를 나누었을 때, 내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보였다. 나 또한 눈물이 났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직원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곳에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었다.

 그 지역 공사장 인부들과 관광객, 택시기사 등등 음식점에는 다양한 고객층들이 많이 왔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나는 그 음식점의 전성기를 같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잘 키웠을 때, 남편이 승진을 했을 때, 시댁의 제사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와는 질적으로 다른 뿌듯함이었다. 이건 오직 ‘나’만이 관련된 뿌듯함이었다.

 김순정 사장의 새롭고도 역겨운 모습을 알게 된 것은 작년 봄이다. 손님은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왜인지 나오지않는 사장의 행방을 궁금해하던 차에, 그녀가 죽을 병에 걸려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녀를 생각하며 눈물이 났고,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사장이 출근한 어느날, 그녀의 짙어진 주름살을 바라보며 나는 진심을 건넸다. 그런 병에 걸려 유감이다, 하지만 잘 이겨낼거다, 내가 사장님 덕에 힘을 냈던 것 처럼 사장님을 위해 내가 기도하겠다, 뭐 이런 한마디한마디들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동시에 사장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를 다듬던 칼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부들부들 떨며 나에게 소리쳤다.

 “네까짓 년이 뭐라고 나를 위로해? 죽고싶어? 남자밖에 모르는 걸레같은 년. 나말고 너같은 게 암에 걸렸어야돼! 이 썅년아!”

 나는 그 길로 <김순정 감자옹심이>에서 해고되었다. 그 뒤로 뉴스에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녀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그런 폭력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으나, 나는 전혀 놀라지않았고 그녀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PWS

 엄마가 나를 실수로 낳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쯤이니,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동안 ‘실수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근잘근 곱씹을 수 있었다. 엄마 (사실 엄마라는 말보다 그녀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편할 정도로 친밀감이 없다) 는 나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가거나 쓰다듬어주거나 사랑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나를 키운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인류애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자랐다.

 사실 나도 썩 좋은 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 나를 온전하게 사랑하고 보듬었으면 좋으련만, 분명 나는 유전자 배열자체가 좋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학교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그녀는 그런 일로 학교를 들락날락해야했고, 나는 그런 일이 있고 집에 가면 항상 쪽팔리는 가문의 수치라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방구석에서 팔로 내 얼굴을 감싸안은채 나를 때리고 있는 엄마를 얼떨결에 바라보면서, 나는 그냥 이 시기가 언제끝날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가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텐데. 나는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고, 몇 주가 지나면 성체와 거의 비슷해지는 그런 동물들의 영상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그렇게 태어나고 싶었다.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다. 항상 그녀가 숨겨두는 장소에 현금다발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삶을 시작하기 위한 밑바탕 돈은 필요했기에 거기에서 딱 100만원만 들고 나왔다. 싸구려 숙소를 잡은 뒤, 아르바이트라도 하고싶었는데, 신분증이 없었다. 아마 침대밑에 떨어져있거나 챙겨나오지 못한 옷 주머니에 있을텐데,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나란 인간은 언제나 이런 실수를 한다.

 슬그머니 들어간 집에서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며 팩을 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나 또한 방에 들어가 우당탕탕 신분증을 찾은 뒤 다시 집을 나왔다. 나는 집을 나올 때까지 나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방관한 그녀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울었다. 그 때 나는 엄마가 나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KSJ

 열심히 산 나를 신은 버렸다. 나의 엄마는 항상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옥죄었다. 하느님이 널 예뻐해주실거야, 하느님의 뜻일거야, 개뿔. 악착같이 생존해낸 나에게 신이 준 건 망할 암덩어리였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짜증났다. 너네가 악다구니쓰면서 생존해낸 내 인생을 알아? 너네가 온갖 수모를 겪어내며 가정을 일군 나를 알아? 미친 놈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난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미소를 지었고 더욱 친절하게 했다. 나를 누군가가 폭발시키기 전까지는 항상 친절했다.

 뇌수술을 하고 잠시 입원했던 그 병원에서 나는 많이 아팠다. 머리는 계속해서 지끈거렸고, 잡생각이 많이 났다. 같은 병실 환자 중 한명은 남편과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 다른 한 명은 노래인지 라디오인지를 틀어놓고 나의 신경을 거슬렸다. 나는 어떤 소리도 듣고싶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어떤 소리가 내 인생에 차지하고 있는 외로움을 자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외로움이란 비어있는 감정은 내 인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인생을 가득 채우고 있는게 공허함이라니. 내 인생은 아예 비어있는건가. 그들의 영원과도 같은 소음은 나에게 자꾸만 어떤 것을 상기시켰다. 인생을 다 걸고 일궜지만 모래성처럼 무너진 음식점. 바람처럼 사라진 나의 딸. 그리고 항상 잘못된 선택만 했던 나.


 그래, 아예 아무 소리도 안난다면 이런 생각이 안 날거야.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저 새끼들을 좀 어떻게 해야겠다. 나는 과도를 들고 병실 커튼을 제쳤다. 내가 할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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