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알콜 고찰글
나는 술을 잘 못마신다.
사실 입에 술 한방울 못대고 이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집단을 가도 알찌(알콜 찌질이) 집단에 분류되는 사람이다.
술 한잔만 먹으면 일단 얼굴은 빨개진다. 전혀 취하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걱정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주량을 따져보자면, 맥주를 마실 때는 그래도 병맥주로 4병은 마시는 것 같고 소주는 한 병까지는 사즉생하는 마음으로 마실 수 있다.
토할 줄을 몰라서 술먹다가 속을 게워낼 수도 없고 얼굴 시뻘개진 채 화장실 변기에 앉아 후하후하 한숨쉬는 그런 귀여운 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술 취향이란게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술 취향.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는 그 이야기. 그것에 대해 용감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맥주는 접근성이 아주 좋은 친구다. 편의점부터 대형마트, 그 어느 소매상에게서도 맥주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다른 주종에 비해 더 많이 마셔본 편이고 그 결과 맥주 취향은 좀 더 확고해졌다.
일단 라거는 너무 탄산이 쎄다. 배가 불러. 불러도 너무 부르다. 그래서 라거는 진짜 덥고 목마른 상태에서 시원한 상태로 마시는거 아니면 싫다. (한약도 목마른 상태에서 시원하게 마시면 맛있다...) 그리고 탄산이 빠져버린 라거는 정말 먹을게 못된다.
가장 기분좋게 꿀떡거릴수 있는것은 바이젠. 워낙에 고소한 것을 좋아하는지라 고소한 맥주 너무 좋다. 바이젠도 참 바이젠따라 다르지만 구수하고 깊은 맛을 가진 맥주들을 마시면 그렇게 만족감이 크다. 나는 술 이름 기억을 정말 못해서 맛있게 마셨던 어떤 바이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데 ... 뭐... 리셋하고 다시 찾아봐야겠다.
친한 언니가 스타우트를 참 좋아하는데 처음엔 이해가 안됐다. 쓰고 까만 맥주에 대한 호감은 아주 뒤늦게 생겼다.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신선한 기운을 가진 기네스를 한잔 마시니까 세상에 ! 나도 그 때부터 스타우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코젤도 너무 맛있고 기네스도 너무 맛있다. 흑맥주의 매력은 어느 맥주도 따라올 수 없는 묵직한 깔끔함이라고 생각한다. 하 근데 가끔 진간장맛 나는 스타우트는 나조차도 참을 수가 없다.
아 그리고 여러분. 무알콜 맥주도 나름 맛있어요 !
나는 콜라의 단맛과 탄산수의 허무한 맛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며 방황할 때 무알콜 맥주를 즐겨마신다. 특히 버드와이저 무알콜 맥주는 단맛도 별로 없고 꽤나 진짜 맥주의 맛을 구현해낸다. 내가 너무 애정하는 무알콜맥주… 얼른 무알콜 산업이 고도성장을 이루어 모든 맥주 회사에서 앞다투어 무알콜 맥주를 내놓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압도적인 감성과 분위기를 지녔기에 2030 여성으로서 버릴 수 없는 와인. 노랗고 어두운 조명, 고급스러운 플레이팅, 한껏 꾸민 사람들, 그런 곳에서 와인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너무 도수가 세서 부담스럽긴 하다. 웬만한 와인들은 거의 13도부터 시작한다. 16도가 소주 참이슬인데 그런걸 내가 쉽게 마실 수 있을리가… 멋드러지게 와인 맛을 느끼고 싶지만 항상 먹을 때마다 윽 도수 미쳤네 ? 이생각밖에 못한다. 저알콜 와인의 개발이 시급하다.
그런 나도 하나 좋아하는 와인이 있는데 바로 쉬라즈 스파클링 레드 와인이다. 약간의 달콤한 맛이 있는데 톡톡 스파클링이 있으니까 맛이 재밌고 어떤 음식하고 먹어도 찰떡이다. 참 ... 내가 좋아하게 되는 와인이 있다니. 역시 뭐든 꾸준히 해보면 신기한 길이 열린다.
소주도 못마시는 내가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사실 난 위스키를 제일 좋아한다. 나중에 내 집이 생기고 멋지게 인테리어를 해놓는다면 위스키 진열을 해놓는게 하나의 꿈이다.(내 집 마련 + 인테리어를 완료하고나서야 실행할 수 있는 비싼 꿈!) 물론 샷으로 먹는건 너무 허황된 꿈이고 ... 위스키에 토닉워터타서 먹으면 나무의 맛이 친근하게 내 혀를 감싸안는다. 위스키를 처음으로 제대로 먹어본날 왜 위스키가 비싼지 절절히 깨달았다. 시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발렌타인 30년산, 30대 안에 꼭 먹어볼거다. 아마 한 병 사면 3년동안 먹을 수 있을테니 오히려 현명한 소비일 수도…!
알콜 찌질이 나는 10년동안 꾸역꾸역 어떻게든 나의 술 취향을 발견했다. 참 뭐든 하면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술은 정말 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인생이 더욱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술 한잔에 인생의 여러가지를 흘려보내는거겠지. 인생처럼 술도 참 나에게 버거운 존재다. 잘 받지도 않고, 쓰고, 먹고나면 어지럽다. 그런데 참 놓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내가 웃기지만, 나는 알콜 찌질이로서의 술 인생을 열심히 살아나갈 것이다. 언젠간 알콜 찌질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