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됐다. 곧 만 28세가 될 것이지만,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고대하던 30살이 됐다.
초등학생 때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쥐불놀이하면서 하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지금 12살인데 30살이 되면 뭐하고 있을까?
그 때의 나야. 나 이러고 있어…
아무튼 나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독립했다. 엄마와 아빠의 경제적 지원은 안받은지 오래됐다.
그리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듣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됐다.
고대하던 어른이 됐는데, 이제부터 뭘해야하는지 막막했다. 돈벌고, 집사고, 돈벌고, 차사고, 돈벌고, 결혼하고, 그러는건가?
뭔가 어른이 된다는 건 이상했다. 어른이 뭔데? 나 이제 뭐해요?
밤마다 이런 잡스럽지만 중추적인 고민들을 껴안고 뒹굴었다.
내가 되고 싶던 어른이 뭐였지?
나는 고등학생 때 철학을 줄곧 좋아했다. 철학책이 멋있기도 했고, 철학자들 특유의 문체가 통쾌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그 바쁜 시기에도 짬을 내서 철학책을 읽었다. 철학을 하고 있다는 내 자신이 좋았다.
우리 아빠는 바둑을 좋아한다. 아빠는 술에 만취가 되어 들어와도 항상 바둑 티비를 켜놓고 꾸벅꾸벅 졸았다.
갈색 바둑판에, 흰 돌과 검은 돌 밖에 없는 바둑. 나이 지긋하게 먹은 어른들이 그것에 환장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바둑돌 소리가 좋았고, 바둑 두는 아빠가 멋있었고, 이세돌, 이창호, 조훈현이 군림하던 그 시대가 좋았다.
바둑이 뭔진 몰라도 바둑이 좋았다.
골프는 부잣집 사모님들이나 재벌집 사장님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봉 1억 5천은 넘어야 골프 치는 거라는 유투버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돈 많은 우리 고모는 골프를 친다. 고모는 나에게도, 사촌언니에게도, 모두에게 골프를 배우라고 한다.
그냥 뭐 별 뜻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훌렁훌렁 넘겨버린 말이었는데,,,,
고모가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랑 놀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라서 그렇게 배우라고 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땐, 엄마가 이것저것 학원을 등록해줬다.
어른이 되니, 이젠 내가 내 마음을 잘 읽어서 이것저것을 배워봐야한다.
어른이란, 스스로를 육성하는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못 읽었던 철학책도 잔뜩 사서 읽고, 바둑도 드디어 배우고 있다. 골프도 학원을 등록해놔서 이제 곧 골프채를 잡아본다.
어른, 성가시기도 하고 좋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