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30년간 슈퍼를 함께 운영했던 부부의 순애보를 들었어. 몸이 많이 피곤해 보였던 아내가 집에 먼저 가 있겠다며 귀가했고, 남편이 셔터문을 내리고 집에 들어갔는데 인기척이 없는 방문을 열었더니 아내가 쓰러져 있었고 그게 그 둘의 마지막이었다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새도 없이 그렇게 홀연히 소리없이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사부곡, 아니 흐느낌이었지. 나이란 놈은 나무 속에 하루하루 쌓이는 나이테 같은 것이어서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들고, 수북이 눈에 보이도록 쌓여야만 감지되는 장롱 위 먼지처럼, 나이가 들었다는 심각한 증세가 몸에 나타나야만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하고 느끼게 하지. 매 순간 1분 1초마다 먹는 것이 나이인데도, 새해 떡국을 먹으며 마치 1년에 한 번만 나이를 먹는 것처럼 우린 살아가지.
많은 평범한 연인들처럼 우리도 20대 후반에 조교 선후배로 만나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지. 그 때 우린 사랑의 싹을 막 틔워가는 시기였기에 주변의 모든 것이 초록물결 그린라이트로 다가왔어.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아니면 몸이 아파도 아픈 줄을 몰랐고, 시기 질투의 화신이었던 한 학생이 우리를 욕하고 돌아다녀도 새의 즐거운 지저귐 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 사랑의 콩깍지에 씌여 있었기에. 하지만 결혼에 골인하기까지는 그렇게 쉽지 않았어. 결사 반대하시던 장모님께 외출금지 명령을 받은 당신이 출근조차 하지 않는 바람에 난 여러 달 동안 끙끙 앓으며 당신을 기다려야 했고,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를 모두 당신의 발자국 소리로 오인할만큼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었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시인처럼 귓전에서 느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다 피를 말리고 세포 하나하나를 솟구치게 만들었으니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 서른 하나, 당신 스물 아홉에 결혼해 우리의 벌거벗음을 변명해줄 예쁜 딸을 하나 낳고, 신이 우리 인간에게 허여한 삶의 기쁨을 맘껏 누리며 30대를 보냈어. 하지만 우리의 40대는 기대만큼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어. 늘 평탄한 길만을 걷는 부부가 몇 쌍이나 있을까만은, 우리의 40대도 가시밭길을 꽃길보다 더 자주 걸어야 했던 시기였지. 많은 직장인이 눈믈로 평생일터를 떠나야 했던 IMF를 만나 실직을 했던 나는 영어관련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1년도 못하고 끝을 보고 말았지. 제대로 된 준비없이 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의 예견된 종지부였어. 그리고, 6개월의 준비 끝에 어렵사리 시작한 영어학원 사업. 그러나, 이것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렸고. 하지만 다행히 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우리의 금지옥엽 딸은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답게 눈물겨운 노력 끝에 모두가 선망하는 일류대학에 합격하여 우리 부부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지.
이제 어느덧 50대 중반에 서 있는 우리 둘.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고 했건만, 당신이 극구 만류하던 사업의 실패로 신용불량자까지 되어 가족의 힘이 아닌 짐이 되어버린 나. 그런 나를 더 이상 웃는 얼굴로 대할 수는 없어 최소한의 핸드폰 문자 소통만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해가는 우리. 하지만, 20대, 30대, 40대에 무수히 쌓아 두었던 적금같은 그 많은 추억만으로도 우리의 여생을 잘 살아낼 수 있겠지? 60대, 70대, 80대....언제 인생 소풍의 마침표가 찍힐지 모르지만, 그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의 돌탑, 세 식구가 함께 했던 추억의 적립금만으로도 우리의 여생을 버터낼 수 있겠지? 작별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이별해야 했던 슈퍼마켓 부부처럼 이번 생과 안녕을 고할지라도, 조물주가 우리에게 허용한 그날까지 지금의 모습 그대로라도 서로를 지켜보며 살고 싶다. 신체적 나이는 속일 수 없을지라도 마음만으로는 20대 청춘의 열정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흐르는 이 세상 가장 큰 폭포는 “나이야 가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