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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선 Mar 17. 2024

변호사급 말솜씨 병훈이, 지금은 뭘 하는지...

놀이마저 개그로 승화시킨 자

골키퍼 병훈이, 화려한 언변술사 우리 병훈이!  

어린 시절, 화려한 언변으로 시골 동네를 휘어잡았던 괴짜 같던 녀석.


자꾸 병훈이 말을 듣다 보면 설득이 돼요.

말을 너무도 잘하다 보니 장악력이 있다고나 할까요.

병훈이는 뭐랄까 어릴 때부터 참 희한했슈.

저희가 충청도 깊은 산골에 살았는데 그때 놀 게 뭐가 있었겠슈? 그냥 주위에 널린 비료 포대 잘라가지고 썰매를 타고... 그랬지.

한여름에는 이제 동네 아주머니들이 심부름을 시키셨는데요.

"하지 말어. 거기서 장난치지 말어. 저 논두렁에 가서 수박이나 좀 따와. 큰 놈으로다가."

그 말에 병훈이를 포함한 우리 친구들은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그냥 막 뛰어갔슈.

어렸응께. 그 수박을 따서 집에 가려는데 병훈이가 그러더라고요.


"얘들아 우리 수박으로 럭비 하는 거 워뗘?"


"수박이 얼마나 무거운디 이걸로 럭비를 혀? 괜히 힘만 들게."


"아니 생각해 봐. 이 무거운 수박을 말이여. 우리들이 같이 다 옮기잖어? 그럼 집까지 우리들 다 같이 힘들게 가는 겨."


"엥? 뭔소리랴?"


"근데 럭비로 가져가잖여? 그럼 중간중간에 수박을 뺏기는 시간 동안은 빈손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거 아녀?"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병훈이 말이 맞는 것 같어. 나는 말이여. 병훈이 말에 완전으로다가 찬성이여."


그랬어유. 병훈이는 신이 내린 달변가였슈.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또 듣다 보면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들은 어떻게 한다?

결국 병훈이 말대로 하게 되거든요. 그래가지고 수박을 이리 뺏고 또 저리 뺏으면서 럭비를 하는데, 이 병훈이가 제 몸을 확 치면서 수박이 그만 땅으로 떨어진 거예요.

어떻게 됐을까요? 수박은 완전 박살 났고 저희는 그날 아주머니들께 완전 박살 났시유.


한 번은 또 이런 날이 있었어유.

시골 논에는 벼베기가 끝나고 나면 볏단을 그대로 논바닥에 깔아놓잖아요.


"저기 말이여. 이 볏단으로 말이여, 골대를 만들어서 축구를 하는 겨.


내가 골키퍼를 할 테니께." 이게 병훈이의 제안이었시유.

그래가지고 이제 병훈이는 골키퍼를 하기로 했고 저랑 같은 팀이 됐어요.

근데 우리 팀 애들이 너무 잘하니께, 우리 골대로는 공이 한 번을 안 오는 거예요.

병훈이는 참 심심하겠다, 싶어서 돌아보면 골대 앞에 멍하니 서 있고, 돌아보면 턱을 괴고 양반다리로 앉아 있고, 골키퍼인데 또 돌아보면 이번엔 병훈이가 이제 아예 누워 있네.

그러고 한참 뒤에 상대팀 호식이가 골 득점 기회를 얻었고 힘차게 달려오더라고요.


우리 팀은 달려오는 호식이를 막지 못했고, 골대 입구까지 공을 치고 들어왔어유. 어라!

근데 골대 앞에 있어야 할 병훈이가 없네.


"야, 골인이다, 골인!"


"뭐야? 병훈이 어디 갔어?" 어이없이 일점을 뺏기고 그제야 병훈이를 찾았지요.


"병훈아!"


"병훈아, 워딨는겨?  어디 있어?" 그때 저 멀리 논 끝에서 병훈이 얼굴이 쓱 올라오는 거에유.


"나 여기 있어."


친구들과 뭐 하는가 달려가서 봤더니 병훈이는 엉덩이를 반쯤 깐 채 큰일을 보고 있었어유.

참나, 축구 시합 도중에 말이에유. 그것도 골키퍼가.

"아, 뭐 하는겨? 우리 축구 시합 중이었잖여."


"골키퍼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쩌냐? 우리 꼴 먹었는디..."


"너네 내 얘기 좀 들어봐." 병훈이가 친구들 말을 끊으며 연설을 시작했어유.


바지를 확 치켜올리면서유.


"너네는 지금 꼴 먹은 게 중요하냐?"


"꼴 먹은 게 중요하지. 그럼!"


"그러면 내 마음은 어쩔겨? 이미 나오는 똥을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말이여.

엉거주춤 죽치고 앉아서 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기분이 좋았겄냐?"


"그러네. 미안혀."


"나도 미안혀."


병훈이가 말이에요. 친구들이 병훈이한테 이제 사과를 하기 시작하는디...

병훈이는 또 거기서 멈추질 않아요.


"그리고 말인디, 호식이 너네도 말이여. 빤히 골대에 사람이 없는데 골을 넣는 겨? 치사하게 말이여."


"그러네. 사과혀."  "미안혀, 병훈아. 너 큰일 보는데 우리가 생각이 짧았다."


"생각이 짧아서 사람이 말이여. 급해 가지고 볼일을 보고 있는데 말이여.

바지에 실례를 해 가면서까지 골대를 지켜야만 하는 겨?

인간이 그러고 살아야 되는겨?"


"그런겨?"


"병훈아, 미안혀."


"미안혀, 잘 못 했구먼."


그래가지고요. 경기 중에 똥 싸러 간 놈은 사과를 안 하고, 외려 골 넣은 사람이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참.

이것이 50 넘어가지고 내가 지금 생각하면 어이도 없으면서 또 헛웃음이 나오는디요.

그때 당시는 우리 모두 진지했시유. 아따, 우리 병훈이 못 이겨, 병훈이 못 이겨유.


나이 들고 보니, 순수했던 그때 그 시절이 때때로 참 그리워지고 그러네요.

결론적으로 참 순수했으면서도 희한했던 병훈이를 좀 정리해보면유.

본인은 절대 사과 같은 거 안 해요. 아니, 아예 사과 같은 건 모르는 사람 같어유

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논리를 개발해 미꾸라지 새끼처럼 빠져나가면서 좌중을 압도하니께유.

그러니 아무도 못 당하죠. 너무 논리적이어서 반박할 수가 없는 거예유.


과연 병훈이는 지금 어떤 직업을 갖고 있을까요? 그것이 참 알고 싶습니다.

언변술사였으니께, 뭐 변호사? 아님 홈쇼핑 판매원? 그것도 아니면 보험사 영업사원?

무엇이 됐건 간에 입을 놀려가며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을 것 같어유.

타고나는 사람은 못 이기는 법이니께유.

그리고, 그런 논리성에서 장악력과 리더십이 나오는 거니께유.

#에세이 #라이프스타일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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