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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성 Oct 01. 2022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매년 새해 목표를 세우곤 했다. 영어 공부를 한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뭔가를 꾸준히 시작해본다든지 말이다. 항상 올 한 해는 작년보다는 더 성장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매년 굳은 결심으로 세운 목표는 또 내년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오히러 더 잘해야지 라는 생각이 자꾸 시작을 미루게 한다. 뭔가 의미 있는 시작을 하고 싶어 날짜를 정하는 것 또한 그때까지 일을 미루는 게 하는 합리적인 변명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냥 시작하면 되고 그냥 즐기면 된다. 목표가 생각보다 어렵거나 중간에 그만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는 더 잘해야만 하고 더 성장해야만 의미 있게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위 말은 가수 장기하가 신인 작가로서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책에서는 상관없는 것들에 대한 장기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매우 아끼는 안경을 잃어버린 일, 즐겁고 해로운 취미인 술을 즐기는 이유, 냉동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양문형 냉장고가 생긴 일 그리고 인생 최고의 라면 등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화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멍 때리기 좋았고 공감도 느끼며 통괘함 까지 맛볼 수 있었다. 


책의 내용 중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맥락을 서퍼에 비유한 글이 있다. 


서퍼는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부표나 지푸라기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바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멋진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내가 패배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음악을 즐겁게 듣고,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창작을 해나가면 그만이다. 마치 서퍼가 거대한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나아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 214


책의 제목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환경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내가 즐거움을 만끽하며 내 역할을 해 나가면 된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나' 답게 살기 위한 장기하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이 책은 다른 한 가지 재미가 더 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장기하의 생각이다. 가수가 직업인 작가는 본인의 음악 취향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리스트를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음악이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앞부분에서 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다 보면 이에 대해 바뀐 작가의 생각이 또 나온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쓴 글이 과장이 심했고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노래 중 90 퍼 이상이 좋았다고 했는데 그것까지는 아니고 별로였다고 말이다. 책 한 권에 이러한 의식 흐름이 비치는 게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며 오히러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다.


마지막으로 서퍼에 대해 언급하는 글이 또 나온다. 좋아했던 문장이라 마지막에 남기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망망대해 위의 서퍼를 떠올린다.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지 않아도 파도는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파도를 맞이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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