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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짱 Jul 09. 2023

난 아내에게 화를 낸다

순간적 울화를 푸는 방법

사도세자를 우리는 귀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 한 비운의 세자이자, 정조의 아버지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는 순간적 울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적인 인물이며 인간적 측면에서는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인도해 주었다면 아마 조선은 다른 역사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울화병이 무엇일까? 흔히 우울증에 의한 화병 같은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감정을 추체 하지 못해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변하여 고함치고 마치 진짜 싸움을 하듯 허공에 주먹을 휘두리기 까지 한다. 

사도세자가 갑작스럽게 사람을 죽인 행위가 내가 볼 때는 이 울화병을 참지 못해 터진 것인데 이를 다스리는 방법을 아버지 영조가 막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도 울화병이 있다. 과거 학교에서 학폭을 당했다.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 내가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이 습관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고통을 속 안에 담아 두고 살아가는데 몇 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기억은 계속해서 새록새록 피어나고 피어날수록 더욱 커진 덩어리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요즘 사춘기가 빨라졌다는 말을 한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사춘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은 옛날에는 상대적으로 밖에서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동네에서 뛰어놀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다보니 사춘기가 중등, 고등 때로 밀려날 수 있었다.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 넘치는 에너지가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도 뛰어노는 것을 보기 어렵다. 내 딸도 초등생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 몇 명과 같이 식사하고 게임하는 정도다. 밖에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부족하다. 

그래서 가능한 운동 학원을 보내려고 했다. 웃긴다. 학원이 문제라 그 해결을 위해 또 학원을 보내려고 한다. 


지금 내가 가진 울화병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중년이 되었으니 없다고? 아니다 사춘기란 말은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어린 친구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가지고 있다. 

취미 생활을 하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울화병을 어딘가에 풀 수 있도록 쏟아 넣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나에게 말을 걸 때 순간적으로 화를 낼 때가 있다. 

이유는? 아내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과거의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고 당시의 나의 상태는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다만 아내가 그 타이밍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매우 기분이 나쁜 흥분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자극도 공격적으로 나가게 된다. 나는 아내에게 화나듯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자신에게 왜 화를 내는지 황당했고 외출하자는 말이 기분이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 나와 대화를 끊었다. 


나의 경우 울화병의 원인은 과거 내가 좋지 않았던 상황을 계속 반복해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난 피해자고 그들은 가해자라는 전제다. 난 그 가해자들에게 그 죄에 합당한 벌을 줘야 했다. 그런 시뮬레이션을 나의 뇌는 실제와 상상을 구분 못했다. 


사도세자는 어땠을까? 아내에게 화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답답한 궁에서 마음 놓고 퍼부을 수 있는 상대는 힘이 없는 내전들 아니었을까? 

만일 영조가 사도세자의 응어리를 풀 수 있도록 좋아하는 예체 쪽으로 응원을 해 주었다면 어때했을까?

그랬다면 사도도 과거의 화가 나는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평온한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감정을 숨길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응어리 어디 가질 못한다. 결국 애꿎은 아내가 그 희생자가 되었다. 아니,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아내도 사람이다. 계속적인 자극은 결국 지치게 된다. 


나는 편한 사람에게 화를 낸다. 아무 이유 없이 나 혼자 흥분해서 화를 낸다. 이것은 나의 울화병을 다시리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이렇게 하다가는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다. 


이렇게 고통받으라고 나온 존재는 아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이해하고 그 방법을 찾으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아내가 없다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편한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할 사람이다. 나를 보살펴 주려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다. 

울화병이라는 방패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말자. 아내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세상의 울화병을 가진 사람들이여


화가 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화를 표현하는 방법이 문제다. 


화를 내는 순간 이 원인을 제공한 것에 내가 항복한 행위다. 그들에게 정복당하지 말자. 


화를 내려는 에너지를 다른 것에 쏟아 넣을 수 있는 것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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