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살아 돌아오는 마음
마지막으로 글을 쓴 날짜를 보니 2023년 12월이다. 꼭 2년 만이다. 이곳에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 시작을 알리는 글을 쓰고자 한다. 오늘이 바로 내가 글쓰기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가 이전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긴장은 있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쓸 때는 사실여부 확인과 자기 검열과 좋은 글이기를 바라는 욕망까지 여러 층위에서 막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이 그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게 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찝찝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어수선하다. 복잡한 생각, 풀리지 않는 고민, 털어놓고 싶은 비밀 같은 것들을 글로 썼을 때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마치 집안일과 같다. 한번 밀리면 걷잡을 수 없는 빨래, 설거지, 청소처럼 내게 글쓰기는 귀찮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나를 돌보는 일과도 같다.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샤워하고 항우울제를 챙겨 먹고 그리고 요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지개를 켜는 것까지. 이런 일들을 하지 않으면 나는 금세 망가진다. (우울증은 그걸 경험하게 했다.) 글쓰기도 그렇다. 나에게 글쓰기는 일상이 되었다.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앞에 두고 글을 쓴다. 내가 실수한 일을 복기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글쓰기는 쓸 때는 편치 않지만 쓰고 나면 그 편치 않었던 마음을 서서히 안정시켜 준다. 큰 파도가 몰려와도 물러갈 땐 잔잔하게 되돌아가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 쓰다 보면 그것이 그렇게 큰 고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불안의 이면에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 마음과 만나는 순간은 소중하다. 걱정과 불안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의 서툰 표현이라는 것을 글을 쓰는 동안 깨달았다.
글은 몸으로 쓰는 것이다. 아이가 선물한 일제 노트에 만년필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이 2023년 12월 6일이고 2025년 11월 12일인 지금 8권째 노트를 쓰고 있다. 매일 쓸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몇 주 동안 노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썼다. 왼손에 만년필을 잡고 (나는 왼손잡이다.) 오른손으로는 노트를 받치고 허리를 세우고 바닥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그렇게 쓰려고 노력한다. 쓰는 나는 많이 아팠고 쓰지 않을 때는 더 아팠다. 그 이상의 설명이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팠고 그 아픔을 견디면서 썼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쓰기를 멈추고 나만 읽을 수 있는 글을 썼다. 그래서 더 아팠던 것 같다. 나는 나에게 글로 욕을 퍼부었으며 아무도 말리지 않았기에 그 욕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은 나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생각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을 찍어 누르는 마음이 공존한다. 내 안의 감시자는 엄격하고 자비가 없기 때문에 내가 한껏 쏟아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힘겹게 종이 위에 풀어놓아도 냉정한 평가와 실랄한 비판으로 펜을 꺾어 버린다. 8권의 노트 중 90%는 자기혐오, 자기 연민, 나르시시즘, 애정결핍, 인정욕구, 원망과 후회의 나열이다. 그 글들은 종이를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감시자가 등장했다.) 나는 내 존재도 부정하고 내 글도 부정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2년의 시간 동안 내 몸은 망가졌다. 10킬로의 체중증가, 고지혈증, 고혈압, 방광염과 배뇨장애, 근육경직, 갑상선암으로 인한 피로와 무기력, 우울증과 ADHD까지. 병의 이름으로 간단하게 고통을 요약해 보지만 내 안에는 통증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통증이 나를 죽이는 동안 글을 쓰는 행위가 나를 살렸다. 아무리 내가 나를 욕해도 희미하게 빛나는 자기에 대한 사랑을 기를 쓰고 찾아냈고 나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글쓰기는 나를 죽이려는 나와 살리려는 나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마침내 살아남았고 그 생존에 대한 기록을 이곳에 펼쳐놓고 싶다. 하고(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생각하는 나는 휘발되지만 글을 쓰는 나는 그 글과 함께 존재한다. 고통과 함께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
만년필로 쓰기 좋은 일제 노트에 2년 동안 매일 또는 간헐적으로 썼다.
8권의 노트. 내가 나에게 어떤 욕을 했는지 다시 읽어보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