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언어와 데이터의 언어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라는 책의 북토크를 들었다. 인간의 언어와 인공지능의 언어는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우리는 읽기-쓰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인간은 삶으로 언어를 배우고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언어를 배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예를 들어 그 차이를 설명했다. 어릴 때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려고 삼 형제가 밥상에 모여 앉았는데 캔따개가 없어 속상해하자 망치와 칼을 찾아와 캔을 따던 아버지의 모습. (그때는 원터치캔이 없었다고 한다.) 언어는 그렇게 삶 속에서 알게 되는 거라고 했다. 웃음소리,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손길, 공간에 스며있는 수많은 감각들, 이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인간은 사랑을 배운다. AI의 계산된 언어와는 다른 삶의 언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사랑이라는 언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듣고 나니 마음이 쓰렸다. 어린 시절 삶으로 사랑을 배우지 못한 나를 본다.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어떤 책에서 본 문장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답할 것이다. 누군가 정의해 놓은 것을 가져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포장할 것이다. 겪은 것이 없기 때문에 나만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 삶으로 배우는 언어는 어떤 이는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이는 가질 수 없다. 아름답고 밝고 행복한 언어를 한껏 가진 이가 있고 고통의 언어가 겹겹이 쌓인 이가 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이가 있고 현실을 생생하게 바라보는 날것의 언어를 가진 이가 있다.
사랑이라는 언어가 체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애를 낳고 알았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엄마는 사랑을 주지 못할 거라는 불안. 그 불안이 읽고 또 읽게 했다. 나는 책으로 아이를 키웠다. 육아서, 심리학책, 자기 계발서, 부모교육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책에서 하라는 것을 그대로 하려고 했다. 학습에 도움 되는 전집을 책꽂이에 꽂고 뇌에 좋은 음악을 틀고 오감 발달을 촉진하는 교구를 사고 한글과 친해지라고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였다. 그것들이 사랑이었을까? 내 아이는 자기 삶 속에서 사랑이라는 언어를 습득했을까?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세대 간 전수된다고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내 말과 행동이 사랑인지 아닌지 알아야만 한다. 책으로 사랑을 배운다는 건 기계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 설명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자식은 기계가 아니다. 사용법을 천천히 익히면서 알아가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사랑이라 굳게 믿고 주었던 것들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랑이 아닐 때가 많았다. 책으로 아는 것은 뒤늦기 때문에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실수들이 차고 넘쳤다. 나는 공부하고 준비하고 노력했지만 책은 고고하고 까마득했다.
아이가 태어나 지금껏 멈추지 않았던 읽기-쓰기가 내가 삶으로 배운 사랑이다. 나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은 되돌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마음. 모르는 것을 알고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바로바로 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읽고 쓰는 것이 좋지도,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라도 해야 내가 주는 사랑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이게 내가 삶으로 배운 나만의 언어니까. 내가 아는 사랑은 이것뿐이다.
어떤 책은 읽는데 3년이 걸렸고 내 글은 비명과 절규로 가득 차 있다. 삶으로 배우지 못한 언어를 갖기 위해 읽고 썼으며 그 시간 동안 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면서 ‘자신을 확대‘시켰다. 사랑이 아닌 것들을 거두어들이며 무엇이 사랑인지 찾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책과 보물같은 문장은 늘 내 삶 속에 있었다. 길이 되어줬던 문장, 계속 걸어가게 했던 문장, 여전히 나를 혼내고 벌주고 아프게 하는 그 문장은 사랑이 고통임을 알게 했다. ‘생각이 언어가 되고 언어는 생각이 된다.‘는 작가의 말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찾은 그럴듯한 문장은 이제 내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고통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언어가 사랑이라면 고통스러운 삶이 조금은 견딜만해진다.
생각이나 느낌, 감정과 의도는 사랑이 아니다.
“행위로 표현되는 만큼만 “ 이것이 중요하다.
사랑이 고통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확대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 ‘푸름이 아빠’가 권해준 책
(한창 푸름이 아빠의 독서육아와 조기교육이 유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