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두려움 그리고 용기에 대하여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의 태도

by 블랙버드


'옳은 일'을 할 때 과정과 사람에 대한 섬세함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잘못된 것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소심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태도다. 소심하다는 것은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후퇴와 퇴보로 여겨진다.


이 '옳은 일'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양육자의 가스라이팅으로(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침묵으로(너만 가만히 있으면 우리 모두가 편해), 젊은 활동가들이 착취당하고 소진되는 모습으로(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고 너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른다는 통념은 너무나 강력하게 뿌리 박혀 있고 그 희생은 자연스럽게 약자가 해야 하는 일이 된다.


내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구성원 중 누군가 피 흘리고 죽어가도 내가 하려던 일의 정당성에만 매몰되어 있다. 내가 한 ‘옳은 일’에 일부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약간의 흠결일 뿐이며 나는 대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누구도 나를 욕할 수 없다. 욕한 사람은 편협한 시각으로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 거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갈등과 고통을 느낀다. 어떤 집단인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옳은 일'은 다른 시각의 사고를 멈추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대의와 동일시'된 사람이 무섭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무섭다. 흥분 가득한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 무섭다. 의심하지 않고 뭐든 잘될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무섭다.


소심한 마음을 통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 두려움은 용기의 재료가 된다. 하지만 두려움은 부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패배자의 마음이다. 개인의 두려움은 사사로운 감정에 불과하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대의는 그걸 버리게 할 아주 좋은 명분이 된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나를 버릴 수 있다. 내 감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옳은 일’에는 ‘용기‘가 필요할 뿐 두려움은 대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희생은 모델이 되고 고통은 문화가 된다. 감정이 거세된 대의가 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나는 곧 집단이고 집단이 곧 나인 상태, 그 흥분에 취해 처칠은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옳은 일'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 그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파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의와 동일시’된 사람에게 아프다는 말은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집단과 나를 동시에 비난한다고 느끼며 귀를 닫아버린다.


그 '옳은 일'로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 선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준 상처를 드러내고 아파하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사람의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낸 용기에 주목해야 한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이 집단에 해가 되지는 않는지, 여기서 어떤 마음으로 버텨야 하는지,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꺾는 건 아닌지. 나 보다도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킨다. 마음껏 화를 낼 수도, 울 수도 없다.


대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따르는 대의와 신념은 삶의 원동력이며 자신을 구성하는 정체성이다.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의와 동일시'된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을 때 우리에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특히 누군가에게 상처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을 때) 소심함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어떻게 용기를 단단하게 다지는지 말하고 싶었다. 갈등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약자이다. 그리고 약자가 목소리를 낼 때는 정말 큰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 용기의 행간에는 많은 소심한 마음들과 두려움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타인의 용기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 변화에 수반되는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 있다. 두려움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기로 선택할 것인가? 두려움 없는 마음이 용기라 믿으며 두려움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깨지고 변화하는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후자가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에 취해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할까 봐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월프레드 비온 입문] 중에서 P35

조안 & 네빌 시밍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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