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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많이 하는 까닭

by 들풀생각

나는 옛날에도 말이 많았고 여전히 그렇다.


다만, 둘 사이에 다른 것이 있다면, 요즘은 남의 눈치를 봐가며 말한다.


지난날에 할 말이 많았던 까닭을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얇고 어쭙잖게 아는 것들을 말로 나타내려다 생긴 것 같다. 내가 아는 몇 가지를 넓고 깊게 여러 번 들여다보았더니 반드시 해야 할 말을 추려내는 힘이 생긴다.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의 설명을 예로 들어본다.


옛날에는 아래처럼 주저리주저리 말하였다면,

제390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요즘은 간추려 이렇게 말한다.


390조는 ‘채무불이행책임’이고 750조는 ‘불법행위책임’이라 말한다.


​그리고 짝을 이루는 사람의 눈에 맞춰 알기 쉽게 말한다.


이게 바로 그 차이다!




또한, 나는 말을 돌려하는 솜씨가 모자란다. 그래서 늘 바른대로 말한다.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언짢아도 했겠다. 그러나, 굳이 물어 보지 않아 모른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맘 놓고 말한다. 좋은 거짓말을 빼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발도 물러설 뜻이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만 가까이에서 더 잘 알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절이 싫다면 그들처럼 또 떠나리라!


내가 말을 돌려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거나 기분을 언짢게 하기 싫어 꾀를 부리 거나다. 어쨌든, 두 가지 다 말을 바로 할 때보다는 많다. 그래서 말이 많게 된다.




내가 말이 많았던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제대로 아는 것이 많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무것도 모르면 거의 말이 없다. 왜냐하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아는 것을 짧고 간결하게 말하면, 듣는 이도 즐겁고 하는 나도 기쁘다. 또 다른 예기를 듣거나 하고 싶어 진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쭙잖게 아는 얘기를 할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래서 말이 길어진다. 이때 듣는 이를 보면 하품을 하거나 딴청을 피운다. 아니면 내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한다. 오랜 세월을 겪어 보니 듣는 사람의 몸짓만 보고도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지와 멈출지를 잘 안다. 제대로 아는 것이 많을 때는 내가 할 말을 잘 추려 내어 짧고 굵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말과 글의 앞뒤가 안 맞아 이러쿵저러쿵 지껄인다.


말만 많이 했던 까닭을 독서를 바탕으로 살펴보니 이랬다.


먼저,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은 맞다. 무슨 책을 그렇게 읽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 글을 간추리는 힘이 모자랐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니면 읽고 나서는 반드시 읽은 것을 간추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에 아무런 뜻을 담지 말고 내 생각을 옮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차피 내가 새긴 뜻을 내가 추리는 일인데 남의 눈치를 볼 까닭이 없다.


다만,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믿지 못하는 마음하나는 가져도 좋다.


소뼈를 끓이고 또 끓여야 진한 국물이 우러나온다. 간장도 된장도 막걸리도 오래 익어야 제맛이 난다. 책도 공부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쏟아붓고 깊이 헤아려 추릴 줄 알아야 진짜 말과 글이 나온다.


짧고 바르고 그리고 있어 보이게…




'고전(법률학교과서)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그 까닭은, 정밀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이해하였다고 자부했던 것이 읽을 때마다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그릇됨을 깨달을 때, 여기저기서 함부로 했던 지적 겉치레로 창피해 고개를 못 든다. 그제야 내가 아는 사실이 참된 이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내 말을 아끼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야 비로소 존중과 배려로 타인을 대한다.


벼가 익는다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익게 되면 스스로 그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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