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Harvey의 The Companion to Marx’s Capital과 양창수 교수의 민법 시리즈 제1권 민법 I(계약법)을 다시 읽는 중이다. 각각 세 번째 읽는 셈이 된다.
앞의 것은 Karl Marx의 Capital을 또다시 읽어보려고 뒤의 것은 민법의 체계를 다시 한번 확실히 정립하려 읽는다. Capital I•II•III을 펭귄 출판사 영역본으로 5번 이상은 읽은 듯한데 머리 탓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David Harvey에 따르면,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의 운동법칙(The Laws of Motion of Capital)의 8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해가 잘 안 될 수밖에.
그래서 지난번 구입한 A Companion to Marx’s Grundrisse를 보태서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 읽어가며 자본주의(Capitalism)를 이해하는 중이다.
무식하니 용감하다.
어쨌든, 한 두 가지 책을 읽고 또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내용을 간추리는 힘이 많이 생긴다. 이건 확실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의 내용을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니 이해가 쉽다고 한다. 내가 전달할 내용의 핵심을 꿰뚫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들풀이 아니지. 끝까지 가봐야지…
나의 주장이 객관적 보편 타당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논변을 수반해야 하므로 그 증명책임을 부담하고자 아래의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성격이 급해서 결론부터 듣기를 원한다.
말은 곧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얼이요 넋이라고 여긴다. 한글은 구조상 영어와 달리 동사가 맨 끝에 온다. 그래서 결론을 빨리 내기가 어렵다. 여기에 우리의 불 같은 성격까지 한몫을 하니 참 가지가지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고객의 투자손실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 건에 관하여 팀장을 거쳐 상무님의 최종결재만이 남았다.
상무님은 매우 지적이면서 성격이 아주 불 같다. 보고할 것을 미리 마련하여 갖추지 못하고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는 혼쭐만 나고 돌아오기 일쑤다.
그분은 가장 먼저, “결론이 뭔가요?”부터 묻는다. 만약, 여기서 어리바리하면 끝이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을 짚고 들어가야 무사히 나올 수 있다.
드디어 내 차례다!
역시나, 그 질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짧게 결론이 뭔가요?"라고 하신다.
나는 바로 "상무님, 이건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 배상청구권이 성립하므로 회사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결재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한다.
너무 짧은 설명에 당혹해하신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라고 하신다.
나는 또 “이건의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최소한 3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요청한다.
한번 해보라 하신다.
속으로 이때를 기다렸다 하며,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의 규정에 따라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고객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고 귀책사유와 손해발생 사이엔 상당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회사가 법원 판례에 따라 책임비율을 손해액의 30%로 상계하여 지급해야 한다. “라고 또박또박 설명한다.
이렇게 2분간 설명드렸더니 시간을 무한정 줄 테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설명해보라 한다.
이제야 대화가 된다!
사실관계의 확인을 통한 사건의 쟁점사항(Issue), 법률의 규정 사항(Rule), 본건의 적용(Application)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Conclusion) 순으로 차분하게 설명한다.
20분 이상은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웃으며 집무실을 나온다.
그날 이후부터는 결재를 받으러 상무님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즉시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