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꼰대의 역사관 (3)
이 글은, 지난번에 올린 ‘반성적 통찰력’에서 언급했던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한반도의 일제강점기 역사(1910년~1943년)와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1943년~1953년)에 관한 책소개다.
이때의 역사적 사실 또한 우리는 그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거의 배우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말로 쓰인 변변한 역사책도 거의 없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우리 주변에 반듯한 역사관을 갖춘 사람들이 드물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대사 공부를 위하여 강만길의 고쳐 쓴 한국 근·현대사와 20세기 우리 역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읽고, 한국통사와 관련하여 이덕일의 한국통사,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변태섭의 한국사통론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너무도 많이 생겨 읽은 책들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공부할 때 근•현대사부터 시작하여 상고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반성적 통찰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본다면, 오천 년 우리 역사 가운데 가장 불운하고 비참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의 휴전일까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1931년(만주사변)부터 1953년(한국전쟁 휴전)까지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21세기 오늘의 한국이 보인다고 여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좌•우 이념 논쟁과 관련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공부하여야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불운의 우리 현대사를 마주하게 되면, 그 시기에 어떤 분파(친일•반일•좌파•우파)에 해당하였는지 가릴 것 없이, 지금 이후라도 한민족의 대동 단결에 대하여 양심이 있는 세력들로 똘똘 뭉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날이 바로 통일이 되는 날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한국사를 바라볼 때, 근•현대사의 인식 없이 곧바로 상고사(고조선-삼국시대)를 공부하여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늘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의 모양으로 현실을 외면한 신비주의 또는 국수주의의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선생이 조선 상고사를 강조하며 우리 민족의 의식을 일깨운 까닭은 바로 민족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말로, 시대정신을 일깨우고자 한 방편으로 우리의 위대한 상고사를 가르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당대의 지식인들이 고민하였던 과제와 더불어 그들이 이룩한 학문적 업적을 배운다면 더욱더 높고 넓으며 깊은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가 영어 공부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학을 번역본이나 중역본 (영어-일어-한글)이 아닌 원문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 2023년 5월 현재의 국제 정세와 그 시대정신(Zeitgeist)을 남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제도권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1931년부터 1953년까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영어원서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래의 글은 한국현대사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자 세계적 석학인 Bruce Cumings가 쓴,
The Origins of Korean War I•II(한국전쟁의 기원)과 The Korean War, Korea’s Place in the Sun과 Andrew J. Grajdanzev의 “Modern Korea”을 모두 읽고 두서없이 써 내려간 독서 일기다.
먼저, The Origins of Korean War I•II는 저자가 미국으로 떠나가면서 한국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므로 그 판권을 모두 한국의 출판사인 역사비평사에 넘긴 것인데 현재는 절판 상태로 알고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두 권을 오래전에 구입하여 여러 차례 정독한 후, 현재 서재에 보관 중이다. 솔직히 이런 책을 ‘영어나 역사교과서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요한 내용은,
가. 해방 전후 조선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여운형 선생 (해방 이후 남과 북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유일한 정치인)과 건국준비위원회 (해방이 아닌 광복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정치단체),
나. 미군정(美軍政)‘일본의 항복으로 삼팔선 이남 지역에 미군이 진주하여 1945년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군사통치 시기’이 시행한 한반도 정책(루스벨트의 신탁통치, 38선 분할 점령, 미군정, 대구 10•1 사건, 정읍선언, 제주도 4•3 항쟁, 남한 단독정부 수립, 여순 10•19 사건, 1949년 6월의 주한미군 철수, 6•25 전쟁, 보도연맹사건, 1954년의 제네바회담),
다. 그리고 6·25 전후의 미군 및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사건 및 이 시기의 비선 실세인 제임스 하우스만의 역할과 그가 바라본 한국인에 대한 시각 “brutal bastards, worse than Japanese",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두 권은 이 책을 본바탕으로 추가적인 사실을 보태기도 하고 또 한국의 통사를 외국인 학자의 시각으로 짧게 요약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의 통사와 관련하여 변태섭 교수의 한국사통론과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 그리고 이덕일 교수의 한국통사를 모두 읽어 보았지만, 이 책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작품은 없었다.
참고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우리의 현대사를 쓰려고 할 때, 반드시 넘어가야 할 산이 바로 브루스 커밍스의 저작들이라 하는 것을 어디서 주어 들었다.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의 현대사를 쓰며 참조한 또 다른 역작인 Modern Korea (한국 현대사론)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44년 미국의 태평양연구소에서 출간한 Andrew J. Grajdanzev의 “Modern Korea”인데,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총독부 통계자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일제의 식민정책을 광범위하게 평가한 사회•경제 역사서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한이 맺힌 마음으로 읽었던지 맨 앞장에 다가 자필로 ‘한국의 지성인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 짤막하게 글을 남겼다.
The book which every intellectual in Korea should surely peruse (his/her) death!
주요 내용은,
일제에 의해 서구의 자본주의제도가 이 땅에 이식되는 과정을, 농업•어업•임업•광업•산업•교통(통신)•금융(은행)•재정•무역•행정부•사법제도와 경찰•보건•교육•종교 분야별로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원서를 POD (Publish On Demand)로 주문하여 구입하였으나, 현재는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다만, ‘한국사신론’의 이기백 교수가 ‘한국 현대사론’으로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번역의 상태는 내가 직접 읽어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2023년 5월 지금•여기의 나를 바로 알려면,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본 나의 어린 시절을 봐야 하듯이, 한반도의 오늘이 궁금하면, 외국인이 쓴 한국의 해방전후의 현대사를 읽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우리를 광장에 세워 거리를 두고 보면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과 삶의 방식이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하다 못해 이상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하여 외국인 학자가 쓴 우리 현대사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펼쳐줄 도서를 소개하였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누가 나에게 우리 현대사의 자화상을 간추려 보라고 한다면,
나는,
“식민(친일)-분단(반공)-독재(권위)-민주화(반도덕성)”으로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