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부란, 배우고 생각하는 것

by 들풀생각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라는 뜻으로 공자가 한 말이다.


공부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배우고 생각하는 것을 수레의 두 바퀴처럼 고르게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새긴다.


보통 독서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읽어가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책에 쓰인 것이 무슨 뜻인지, 어떠한 경우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인지를 모른다면, 울퉁불퉁한 가파른 시골길을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멀미는 필연이다.


다시 말해, 수많은 명제들의 구체적 의미와 현실적 적용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법학과 철학을 공부할 때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의 첫 단계는 의심이다!


​바꿔 말해, 바로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정말로 사실인지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모두가 다 사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Karl Marx가 즐겨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고자 이 경구를 영혼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사물에 대한 인식론이나 가치관은 대부분 미성숙한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으며, 혼자힘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어떤 외적 권위나 강제에 의해 주입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


참고로, 이렇게 왜곡되어 형성된 인식을 ‘이데올로기’ 또는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라 부른다.




오늘 유피에이 판매 담당자가 연락을 해왔다. 이 여사님과 함께 한지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정기구독을 하고 있는 The Economist의 만기가 도래하여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고 한다. 연간 구독 금액은 온라인 가격을 포함하여 546,000원이다. 지난 2월에 계약을 갱신한 Financial Times는 온라인을 제외하여 729,000원이다. 모두 합쳐, 1,275,000원이다.


The Economist는 2005년 6월부터, FT는 2007년 4월부터 각각 정기구독을 하였다. 물론, 둘 다 정기구독을 하기 전에 2004년부터 비서실에서 구해다가 읽어온 터였다. 당시 우리 회사는 외국계회사라서 대표이사가 외국인이었는데 나는 비서와 통역사들을 통하여 이 잡지를 공짜로 구해 독해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후에 정기구독을 하며 읽어오고 있다.


다른 잡지와 견주어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러나, 비싼 만큼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 처음 구독부터 여태까지 약 22,950,000원을 쏟아부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권당 80~95페이지 정도로 1,000권 이상을 받은 셈이 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2021년 12월 말까지는 이 잡지들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을 몰랐다. (물론, 이날까지는 전체의 3분의 1쪽만 읽었다.) 그냥 낸 돈이 아까워 의무감으로 읽어 내린 듯하다.


영어•법학•철학공부는 미련하게 해야 된다고 본다.


신문과 잡지를 읽는 것 말고도 틈틈이 Karl Marx의 Capital I•II•III을 읽고 또 David Harvey의 The Limits to Capital과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와 같은 현실 반영의 사회과학도서를 보태며 세상을 읽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금융과 경제와 관련한 원서를 부단히 도 읽어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Neo-liberalism의 현대적 의미를 깨닫고 그제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다.


그때부터 혼자힘으로 세상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게 되어 The Economist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기이한 버릇까지 생겼다. 이날 이후로 새로운 도서는 David Harvey의 저작 외에는 거의 구입하지 않고 기존에 사들인 책을 또다시 읽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신문과 잡지만 죽도록 봐야 재미가 없을 것이다. 관련 이슈를 방송과 책으로 넓게 배우고 깊이 물어야 만이 어느 날 갑자기 재미가 생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그냥 내 경험일 뿐이다


아래의 책을 두 번 이상 읽었더니 내 나름으로 세상을 읽는 눈이 생겼다.


David Harvey의 The Limits to Capital를 필두로, The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The New Imperialism, Marx, Capital, and the Madness of Economic Reason, Enigma of Capital, The Ways of the World, Seventeen Contradictions and the End of Capitalism, The Anti Capitalist Chronicles, A Companion to Marx’s Grundrisse


서재에 쌓인 책의 대부분은 고전의 반열에 든 것이라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새롭다. 대신,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읽고자 The Economist와 Financial Times를 삶의 교과서로 삼아 공부하고 있다. 영어로 된 것만 읽는 것 같아 위의 것들을 보는 이외의 시간에는 민법과 행정법과 같은 법학 교과서를 통독한다. 우리말로 쓰인 논리학 책이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법학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알아가며 배우니 내용 또한 더 쉽게 다가온다.


2015년 말에 행정사 자격을 취득하고부터는 홀로 법학 공부를 하며 행정법률 전문가 노릇을 하는 꿈을 꾼다. 이 나이에 굳이 법학전문대학원에 가는 것은 돈도 시간도 낭비가 될 듯해서 이 공인자격증을 바탕으로 실력을 쌓기로 했다. 50이 넘어서는 가급적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기존의 배운 경험과 지식을 정리하라는 가르침을 실천 중이다.


행정법률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법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시험에는 합격하여 전문자격사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법 공부를 엉성하게 하였으면 엉성한 자격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TOEIC 고득점을 받고 박사 또는 석사 학위 그리고 갖가지 전문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공부를 내팽개치는 아무개들과는 다른 길을 가야지.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부터 갖추려 한다.




다시 한번 되풀이하며 이 글을 끝낸다.


나를 둘러싼 바깥 세계를 옳게 읽고 내게 알맞은 삶을 살고자 독서한다. 그러나, 책은 삶이라는 실전문제의 연습 문제집일 뿐이다.

덧붙이면, The Economist (Financial Times) 따위에서 뽑아낸 시대정신(Zeitgeist)이 시험문제이고, 그 정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며 책(정치•경제학•철학•법학)은 곧 수험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문학 공부 계기; 어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