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내가 쓰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를 빼고는 주제에 어울리게 우리 주변에 늘 있을 법한 가공의 인물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 이야기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및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직원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 폭행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회사의 지침이 생기기 한참 전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계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나에게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기 위한 인문학공부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 공부를 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려 한다.
2007년 7월 7일 오후 7시 7분 7초, 총 통화 시간은 7분 7초다.
이것이 그 할머니와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보았고 앞으로도 듣지 못할 그러한 욕설로 가득 차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내가 이긴 것으로 보인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상처뿐인 영광이다. 이겼지만 건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상대는 무자력인 경우다.
아니다!
이 일 때문에 내가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얻은 것이 무척 많다. 그러니 이긴 것이 맞다.
잘은 모르지만, 그 할머니는 업무방해죄로 벌금형 처분을 받은 듯하다. 여전히 나는 서랍에 할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 때문에 힘이 부칠 때는 어김없이 꺼내서 읽어 본다. 이 편지를 읽고 나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의 말썽거리는 저절로 풀린다.
이 일을 겪고 나서 회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리가 높든 낮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 성인군자요 보살이다. 물론, 그 할머니와 견주었을 때 말이다. 앞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을 다칠 일이 없을 듯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제대로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인문학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것만 제대로 깨우치면 내가 하고 있는 밥벌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 직무 수행을 위해 인간의 본성을 다룬 동양의 사서(四書)와 서양 철학자 David Hume의 The Treatise of Human Nature와 Adam Smith의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를 여러 번 탐독한다.
참고로, 학문을 골프 경기로 치자면 동양 철학은 Driver Shot, 서양 철학은 Iron Shot, 법률학은 Putter Shot 라 여긴다. 다시 말해, 동양 철학은 총론이자 거시이고, 서양 철학은 각론이자 미시다.
인간의 본성을 공부하다 보니 저절로 탐욕(시기, 질투), 분노, 어리석음, 교만, 회의, 악견(고집)이 발생하는 까닭도 궁금해져서 관련 책을 연구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의 행태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 내가 주로 보는 것은 시기나 질투다.
여러 정념 가운데 이것만 잘 따져봐도 상대방의 인성이 보인다. 혹시라도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한테 거꾸로 내 속마음을 들킬까 봐 웬만해선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얼마 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시기 또는 질투 감정을 분석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더니 집에 계신 그분이 되묻는다. “세상을 뭘 그리 어렵게 사냐고!” 그래서, 나는 내가 마음 편히 살고 싶어 그런 것을 연구한다며 답한다.
사실이다!
어쨌든 문제의 그 할머니 얘기를 마저 꺼내려한다.
내가 그 할머니와 2006년 4월 4일, 오후 4시 44분 44초부터 2007년 7월 7일, 오후 7시 7분 7초까지 통화한 횟수는 전체 123건이며 우편은 23통이나 받았다.
평균통화시간은 짧게 03초 길게 13분 54초이며, 각 편지의 전체 장수는 3페이지 분량이다. 3초는 예상가능한 아주 짧은 욕이다.
내용의 90% 이상이 나와 해당 임직원 그리고 회사에 대한 욕이다. 살아오면서 말로도 글로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하겠다. 전화는 주로 식사 시간 바로 직전인 11시 20분에서 40분 사이에 거의 모여 있다.
이 일을 맡은 초기에는 통화를 끝내고 점심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아마, 욕을 많이 얻어먹어 배가 불렀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공부라 여기고 즐기기 시작한 날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참으로, 신기했다.
혹시 내가 성격에 장애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왜냐면, 내 성격에 저런 소릴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 의문은 여전히 미해결상태다. 아마 독서의 효과로 추정하고 싶다. 산림처사의 대명사 남명 조식 선생은 그 어떤 대상과 인물에도 의연했다.
사건의 발단 및 처리과정은 이렇다.
1. 사실관계의 요약
2006년 4월 초순에 이 글의 주인공인 그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곳 가까운 지점에 들어가신다. 이 분은 이전에도 자주 지점에 들러서 직원들의 불친절을 이유로 소란을 피우시는 분이다. 거래하는 금액도 거의 없으며 큰 소리로 욕을 잘하신다.
그날따라 신입 여직원이 업무 처리를 좀 서툴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객장 내에서 크게 소리치며 집기비품까지 던진다. 이 광경을 지켜보다 참다 못 한 여자 부장님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시라!’고 했다고 한다.
직원의 말을 따르지 않고 되려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욕설을 퍼붓는다. 이의 대응으로 그 부장은 할머니의 가방을 엘리베이터로 먼저 들고 가면서 나가시라고 했다고 한다.
나중에 지점에 조사를 나가서 CCTV를 확인하니 모두 사실과 일치한다.
2. 사건의 쟁점
이 할머니는 본인의 행동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의 불친절 만을 이유로 해당 직원들과 지점장에 대한 징계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쉽게 말해, 할머니의 통장을 바닥에 던지고 가방을 엘리베이터 앞에 갔다 놓는 등 응대직원의 불친절에 관한 것이다.
할머니의 주장이 모두 사실 상위다. 쉽게 말해 당사자의 주장이 서로 달라 모두 어긋난다.
3. 사실조사 및 판단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에 그 처리결과를 알려주겠다며 응대해 드렸다. 그리고, 해당직원들에 대하여 주의 조치를 내렸다고 둘러 대었다.
사실 직원의 잘못은 할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말고는 잘못이 없었다. 그래서 그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에 일단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할머니로부터 달갑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4. 추가 민원에 대한 처리
그 일이 생긴 이후 한 달이 지나 그지점에 다시 방문한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의 직원들이 모두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을 면직시키거나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내라고 억지를 부린다.
인사 발령은 내가 속한 부서의 소관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 일은 그 정도로 처리되어야 할 사안이 못 된다고 설명한다.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 계속 억지를 부린다.
지금부터는 수위를 높여 문제행동 소비자, 일명 블랙슈머(blacksumer)로 등급을 격상시켜 처리하기로 한다.
물론, 내 담당이다.
관련 법률 규정을 근거로 회사가 할머니에게 처분 가능한 여러 조치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 할머니는 홀로 사시는 분인데 내 경험상 반은 치매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의학적 근거는 없다. 이런 분들 주변에 많다. 합리적인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냥 전략적으로 대응한다. 모든 전화는 나에게 집중하게 한다.
할머니가 전화를 해서 욕을 하고 끊고 나면 바로 그 할머니 댁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자택 주소를 부르며 자꾸 이러시면 내가 찾아간다고 겁을 준다. 진짜로 내가 찾아갈까 봐 그다음부터는 공중전화박스나 공공기관에서 전화를 한다.
다시 다이얼을 돌려 보면 할머니는 이미 자리를 뜨셨다. 계속되는 숨바꼭질 게임이다. 이제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지점으로 가서 소란을 피운다. 사실, 나는 그러한 억지 성향의 고객대응에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고객이 나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블랙슈머는 상대직원이 아주 강하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 그래서 나는 소리 지르는 고객은 내가 더 크게 소릴 지르고 유식한 척하는 식자층은 내가 더 유식하게 말한다. 그러나, 욕을 하면 그냥 듣기만 하다가 대신 형법상 모욕죄 등으로 신고한다고 겁만 준다. 이런 죄를 언급할 때는 반드시 관련 법률명칭과 조문과 그리고 처벌규정을 또박또박 알려준다.
아무튼 나를 피해 지점으로 간 할머니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지점에서 경찰도 여러 번 불렀는데 별 소용이 없다. 몇 번이 되풀이되다가 경찰도 힘에 버거웠는지 회사에서 차라리 서면으로 신고를 접수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머뭇거린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되풀이되어 참다못해 업무방해혐의로 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신고에 따라 경찰에서 이런저런 조사를 끝내고 할머니에게 과태료와 범칙금의 처분을 내린다. 할머니는 회사가 고객을 고발했다며, 과태료 통지를 받고도 돈을 못 내겠다며 나를 협박한다. 그리고 과태료 처분통지서를 동봉하여 내 앞으로 보내온다. 나는 또 경고문(과태료를 물지 않으면 범칙금과 나아가 벌금도 물을 수 있다)과 함께 할머니한테 보내드린다.
이런 과정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은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모양이다. 어느 날 할머니의 국선변호인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관계를 묻는다. 있는 그대로 설명하니 웃으며 할머니를 잘 타이르겠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한 달이 지날 때 즈음에 낯익은 번호로부터 전화가 온다.
바로, 그 할머니다.
이 지긋지긋한 일이 끝이날 조짐이다. 예감이 적중했다. 할머니가 나보고 잘 먹고 잘살라 하신다. 내 경험상 민원인들이 회사에 손을 들 때는 패턴이 비슷하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짧게 큰소리로 욕을 한다. 이때는 그냥 ‘죄송합니다, 잘 알겠습니다!’고 대답하기만 하면 된다. ‘최후의 변론이구나!’하면 된다.
모든 상황은 끝났다!
이일을 겪고 나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풀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면 해결방법이 보인다는 깨달음이다. 보태 말해, 상대방이 어떤 성향의 소지자인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아내는 좋은 방법은 직접면담을 통한 외모, 말투, 민원신청서상의 글 그리고 직업 등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나를 뺀 모든 사람은 민원인이며, 논리적 설득과 감성적 공감으로 그들의 민원을 해소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방식,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한다. 결국은 이 범주도 감성적 공감의 영역이다.
요즈음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 특성을 낱낱이 살핀다. 나를 깨닫고 나서 그들을 잘 분석하면 세상의 많은 분쟁은 해결되리라 믿는다.
글이 산만하여 급히 마무리한다.
결론적으로,
‘사회생활 속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논리적 설득과 감성적 공감으로 대부분 해결된다!’고 보므로, 이 두 가지 덕목을 기르는 것이 나의 독서 목적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논리적 설득은 법학과 서양철학으로 감성적 공감은 동양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으로 배운다.
덧붙여, 감성적 공감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취미활동을 독서와 함께하면 그 효과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