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며 생각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모습과 모양으로 삶을 살고 있구나 하고…
그래서, 나도 남들과 다른 나만의 뭔가가 있는가 생각해 본다. 늘 영어 원서와 Financial Times, The Economist, CNN & BBC를 끼고 살며, 법학 교과서를 읽고, 달리고 걷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것이 없다. 느닷없이 이런 것도 잘만 꾸미면 조금은 색다른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외국인도 아니면서, 외국생활을 하는 한국인도 아니면서, 또 먹고사는데 바로 써먹지도 못하는 영어와 함께하는 나의 삶을 소개해 볼까 한다.
내가 영어 방송과 신문 그리고 법학 책만 보는 까닭은 국내정치와 경제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나타내면, 독립적•주체적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제 정치와 경제에 관한 뉴스는 물론 국내의 것들도 모두 FT와 The Economist 그리고 CNN & BBC를 통해 접한다. 2009년 대통령 사망 소식도, 작년의 이태원 사고 소식도 모두 CNN의 Breaking News를 통해 알았다.
대놓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2022년 3월부터 현재까지 한글로 쓰인 책은 법학 교과서 이외에는 단 한 권도 보지 않았다. 모두 영어로 된 글과 책을 본다. 믿지는 않겠지만 사는데 별 지장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여러 모임에서 나오는 대화 주제에 소외는커녕 오히려 이끌기도 한다. 이제는 더 깊숙이 빠져들어 평생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미 그렇게 된 바에 제도권에서 주장하는 말, 곧 ‘성년이 지나고 언어를 배워봐야 소용없다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려 한다. 또한, 통문장 암기, 드라마 또는 영화(소설)에서 원어민이 잘 쓰는 표현 외우기, 이런저런 영어학원 다니기 등의 단기 땜질식 처방으로는 언어 습득에 한계가 있음을 반증하려 한다. (솔직히 나도 많이 해봤고 돈도 많이 써봤다.)
덤으로, 비싼 돈을 내가며 법학전문대학원에 가지 않고도 혼자서 법학공부가 가능하며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경제현상의 분석도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한다. 나의 미천한 경험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현대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바로 자유인인 ‘독립적 주체 만들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바,
아래에서는 각종 정보를 남의 도움 없이 영어로 취득함으로써 얻는 장점을 정치와 경제를 기준으로 설명하고 법학을 함으로써 또 스스로 설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영어로 글을 읽고 말을 듣기를 꽤 오래 해봤는 데 영어 실력이 늘어남으로써 생긴 일반적인 효과 말고도 좋은 점이 두 개 더 있다.
우선, 국내 정치와 관련 당사자들의 꼴사나운 짓거리를 보지도 듣지도 않아 좋다.
굳이 밝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글을 쓰는 처지에서 몇 마디만 덧붙여 보면 이렇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계는 사상과 철학이 없는 정치인들 때문에 정치는 없고 정권교체라는 복수의 악순환만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직선적 발전을 이루고 나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동안 이룬 성과에만 만족해하며 멈춰 있다.
민주화 다음에 오는 것은 선도력을 가진 선진화 단계다. 이는 과학이나 인문, 논리 및 법의 정신이 바탕되어야 한다. 이 영역은 사대주의(종속성)를 벗어난 자유로운 독립적 주체가 만드는 사유와 철학의 세계다. 민주화 다음의 진정한 혁명은, 감정을 벗어나 논리력을 회복하는 훈련을 거쳐야 이룰 수 있다. 한말로, 감각과 경험을 넘어 사유의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 가운데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로 정리해 어떤 주제든 피하지 않고 논쟁하려는 논리적인 사람을 찾기 힘들다. 정치토론의 수준이 예능 프로그램 보다 못한 저질스러운 말장난 그 자체다. 못 배운 사람이라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좀 배워 보려 하지만, 그럴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와 관련된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다행히, 공•사적인 모든 모임에선 정치와 종교 얘기를 하지 말라한다. 덕분에 국내 정치를 하나도 몰라도 무식하다는 소릴 안 듣는다. 물론 선거 때는 투표장에 가서 기권을 행사하면 양심에 거리낌도 없다.
다음으로, 경제 이슈에 대하여 외국 석학들의 견해를 직접 접하고 내 멋대로 경제현상을 읽고 해석하며 유식한 척할 수 있어서 좋다.
내가 The Economist와 Financial Times의 칼럼을 직접 읽으려고 다짐한 계기는 매우 단순하다.
자본시장의 최전방인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 금융·경제 환경을 분석하는 도구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신문과 잡지 그리고 증권회사의 리서치 자료다. 신입사원 때부터 오랜 기간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경제신문과 주요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한 리서치 자료를 읽으며 크게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콕 집어 말하면, 국제 정치 또는 경제를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칼럼 또는 자료에 늘 붙어 다니는 『The Economist에 따르면, Financial Times에 따르면』 문구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설만큼은 발행신문사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 있겠지 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봤는데 이 신문(잡지)을 발행한 언론의 생각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오직 ‘어느 세계 주요 경제지에 의하면’이라는 말만 난무하다.
바로 이문구 때문에 나는 해외의 석학들만 본다는 The Economist와 Financial Times의 정기구독을 하였다. 오랜 모진 세월을 견딘 지금에는 모든 것의 금융화(The Financialization of Everything)와 Globalization 그리고 Neo-liberalism 영향으로 굳이 한국의 경제신문과 잡지 그리고 국내 금융투자회사 애널리스트의 견해나 리서치 자료를 보지 않더라도 남들과 글로벌 경제 및 자본시장의 전망 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에 별 지장이 없다.
이상 두 가지에 더해 법률행위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한 독립적 자유인의 노릇을 하고자 법학도 공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을 법적으로 규정짓는 생활체계와 가장 밀접하고 모든 법 가운데 가장 일반법은 민법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앞으로도 계속 맨날 같은 소리를 되풀이할 것이다. )이 법의 기본 원리만 이해해도 행정법과 형법 따위의 법률은 이해가 쉽다.
내가 법학을 혼자서라도 공부하는 이유는, “공부 잘해서 비싼 돈 내가며 좋은 학교를 나와 어려운 시험을 붙은 엘리트라 뽐내는 오만한 무리들”앞에서 위용(威容)을 갖추기 위함이다.
사시출신과 마찬가지로 요즘의 로스쿨 출신 법조인 역시 법조윤리(법철학 공부 절대 부족)가 없는 법률전문 기술자가 대거 판을 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로스쿨은 고시라는 사시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하며 합격률이 50%에 머물러 '변시 낭인'을 양산하고, '다양한 경력 변호사 배출'을 한다던 명분은 퇴색하고 암기위주 수업으로 돌아가며, 고액 수업료로 '돈스쿨' 비판을 받고 있음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쨌든 나는 그들과 차원이 다르게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자기 자랑(爲人之學) 대신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위하여 하는 공부(爲己之學)를 평생토록 할 생각이다.
기타, 민법공부의 중요성 따위에 대하여 이 브런치에 이미 많은 글을 올려 두었으므로 더 이상 언급을 피하기로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립적•주체적 인간이란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 독점되어 있는 일반 또는 전문지식을 나 스스로 찾아서 그 뜻을 읽어내고 구체적으로 나의 삶에 적용하기 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인문학문•사회학문•자연학문을 통섭하면, 세상을 읽을 인류 보편의 가치와 맞는 자기만의 고유한 거푸집이 생긴다. 스스로 생각하여 만든 틀로 말과 글과 몸짓을 해야 비로소 독립적 주체인 “자유인”이 된다.
남이 다듬은 길과 쓸모(제도권 공교육,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 서적, 국내 매스 미디어, 연예 프로그램 따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면 노예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