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란의 사진은 2022년 11월 10일 찍은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로 싱가포르 이슬람 사원 중 가장 화려한 종교 건축물이라 합니다.
나는 종교가 없으며, 신의 존재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따로 모시는 신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여러 종교의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의 부정과 부패를 마음껏 비판할 수 있으며,
학자 또는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에 관한 이러저러한 생각을 기탄없이 펼칠 수 있다.
아, 얽매임이 없으니 이토록 자유롭구나!
이 글은 평소 종교에 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모든 종교를 그저 학문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종교란, 자기 스스로 현재 자기의 원인이자 결과인 무명(無明)을 없애고 본연의 자기로 돌아가는 길이며 “인간 다움”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무명(無明)이란, 불교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하는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의 근본의(根本義)에 통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다.
나는,
유교 경전을 공부하여 내면적 자기 수양 덕목인 ‘중용’을 지키고, 불교학을 깨우쳐 대외적 실천사상인 ‘중도’를 배우며, 기독교 ‘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궁극적으로 “나를 깨우쳐 남을 돕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인격체인 “큰 사람”이다!
내가 가진 종교는 곧 “학문”이다.
나에게도 성현이 지은, 또는 성현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경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전들’이다.
내가, 그 밖의 다른 종교인들과 다른 점은 경전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보는 경전은 여러 가지라 교조적으로 따르지 않아도 되고 유일하다며 맹목적으로 숭배할 까닭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연처럼 늘 변화무쌍하여 한 곳에 머무는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멀어서 좁게만 보고 귀가 어두워서 잘 듣지 못하는 무리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얽매이지 않고 산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가치•신념•사상•주의 따위와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나의 경전인 ‘고전’ 역시도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다. 고전을 숭배하며 그 속에 빠져들어 헤매기만 하다가는 속만 좁아지거나 지적허영만 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늘 움직이므로,
‘그 옛날의 잣대’가 아닌 ‘21세기 오늘의 것’으로, ‘빠져 들면서’가 아닌 ‘따져 들면서’ 주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지금•여기 삶의 얼 (시대정신, Zeitgeist)을 찾아 그 답을 물어보기 위한 지침서로 쓸 때만 그 값의 쓸모가 빛난다.
삶이 팍팍해져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경전이 없는 사람들은 고전에게 그 길을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