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치며 기계치고 둔치다. 또한 공부도 못했다.
그러나, 배우고 물어야 하는 학문(學問)은 그 어느 누구 보다 더 열심히 한다!
길치, 기계치 그리고 둔치!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모두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Navigation 덕택으로 나의 단점을 많이 극복했다. 그러나, 그 또한 기계다. 도긴개긴이다.
내 인생에서 길치라서 큰일 날 뻔했으나 다행한 일 세 가지가 있었다. 대학 입학시험 때 입실 시간에 늦었던 것과 회사 최종 면접 시간에 늦은 것 그리고 그분과의 소개팅에 늦었던 일이다.
이럴 때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모두 지금•여기의 나를 규정하는 일들이었다. 시험은 당황해서 1교시를 망쳐 2 지망으로 지원한 학과의 학사를 취득했고, 면접은 대표이사가 30분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28년 차 직장인이 되었으며, 그분과는 현재까지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는 모두 처음 가는 길이라 차츰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보니 나는 타고난 길치와 기계치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매뉴얼을 보며 기계의 원리와 네이버 지도앱을 켜며 어디 가는 길을 찾을 때면 식은땀만 나고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해보려고 애써보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나도 그 원인을 정말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머리가 우둔한 둔치인 것 같다.
공부도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이나 잡지 또는 판결문을 읽을 때도 한번 읽고는 절대로 이해를 못 한다. 연거푸 두 번, 세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모른다. 이쯤 하면 타고난 둔치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심이다. 미련할 정도로 집중한다. 가령, 지도와 매뉴얼 그리고 책은 눈빛이 종이의 뒷면을 꿰뚫을 정도로 본다.
이렇게 해보니 모든 것이 빨리 이해는 못해도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내용이 뚜렷해지는 듯했다!
제도권에서 머리가 썩 좋지 않아 공부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은 사람이 겪어 보니 뒤늦게 나 같은 성향은 공부보다는 학문(學問)에 잘 어울림을 알게 되었다.
내친김에 수학이나 영어를 머리로는 잘 풀지 못하지만 엉덩이로 끈기 있게 공부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공부와 학문’이라는 주제로 나의 넋두리를 보탠다.
I. 공부와 학문
공부와 학문은 다르다!
공부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잘하고, 학문은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이 잘한다. 이 둘의 다른 점은 인간의 본성인 지적 호기심이 강한가 여부다.
앞의 것은, 대체로 자만하기 쉽고 기득권 유지(상위 성적)때문에 문제풀이 공부에 집중한다. (예, 수능 고득점자)
한편, 뒤의 것은 지켜야 할 기득권이나 자랑할 만한 관습이 따로 없어 시험공부 이외의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근저에서부터 검토하는 성향으로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색 그리고 유연한 사고를 하기 때문에 학문을 하기 쉽다. (예, 광범위한 독서가) 하지만, 이런 부류는 제도권의 성적 우수자들에 견준 지적 열등감으로 자신이 학자가 될 잠재력이 충분한 사실을 모르고 산다.
이런 까닭으로,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공부 잘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큰 학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육은 ‘새로운 지식을 찾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누가 더 잘 외우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공부인, “문제풀이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제도권에서 보면 이런 나의 주장은 교육분야 비전문가의 어쭙잖은 짧은 생각이고 헛된 망상으로 보일 뿐이다. 나도 잘 안다.
II. 문제풀이 전문가의 행보
글쓴이는 가방끈이 짧아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고 학계의 현실을 직접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시중 서점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국내 권위자가 외국의 것을 옮겨 쓰고 베껴 쓰고 줄여 쓴 책 말고 자기 생각을 담은 저술이 없다는 것을 증거로 삼아 사실을 추정하며 이 글을 썼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제풀이 전문가들은 주어진 문제만을 잘 푸는 초일류 전문가가 된다. 그리고 외국의 우상(특히, 미국의 석학)들이 새로이 생산하여 가공한 지식을 있는 그대로 베껴 한국으로 퍼 나른다.
구체적인 과정을 적어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하여 해외의 석학자들이 창조한 지식을 그대로 수입하여, 국내 수요자들에게 공급하는 중간 상인의 노릇을 한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 특히, YouTube의 발달과 영어실력의 향상 그리고 인공지능의 출현(AI)으로 지식을 해외에서 직거래하는 나 같은 사람이 늘어나 더 이상 이들을 찾을 이유가 사라지는 세상이 왔다.
III. 둔치가 이끄는 세상
앞으로의 세상은 과거의 약삭빠른 문제풀이 전문가보다는 어리석고 둔하지만 생각을 넓고 깊게 하는 둔치 같은 사람이 이끌지도 모르겠다. 전자들이 하던 노릇은 Chat GPT 같은 AI가 더 잘할지 누가 아느냐?
인문고전 독서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다산이 제자 황상에게 일러준 이런 경험을 겪지 않을까 한다.
“머리가 둔한데도 끊임없이 열심히 하면 지혜가 쌓이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데도 꾸준히 하면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목멱산(남산의 옛 이름) 아래 살며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고, 성품이 게으르고 졸렬해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했던 사람.
오로지 책만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아픈 것도 전연 알지 못했던 책만 보던 바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이덕무(李德懋) 선생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