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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찾기; 나무와 숲

by 들풀생각


나는 숨은 그림 찾기에 영 잼뱅이다.


​온 그림의 짜임새를 보느라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것을 찾지 못한다.


그럴듯하게 핑계를 대 보자면, 숲을 보느라 나무를 보지 못한다.




시험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시험처럼 학문 전체 체계 가운데 그 자격에 필요한 부분만을 따로 모아 꿰매서 기본서로 만들고 거기서 문제를 뽑아내는 시험은 잘 보지 못한다. 국어나 영어 시험 같은 데서 원문의 한 부분을 가려 뽑아 보기로 주고서 문제를 풀라고 내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시험 범위가 아닌 곳까지 공부하다가 남들처럼 붙지 못하거나 한참 늦게 따라간다. 또, 면제된 과목을 전체 틀을 짠다고 다른 과목과 함께 공부하다가 자격시험에 떨어진 때도 있었다. 남들 눈에는 미련스럽기 짝이 없어 보일 테지.


나는 늘 시험문제가 나오는 곳만 죽도록 공부하고 원문(原文)은 다시 읽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가령, 칸트의 3대 비판서, 곧 순수이성•실천이성•판단력 비판을 하나도 읽어 보지 않고서 학원 강사가 챙겨주는 핵심 내용만 줄줄 꿰고 논술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는 다시는 그 책 본문(本文)을 펴지 않는 학생들의 삶과 거꾸로 사는 것 말이다.


주변머리 없이 시험에 나왔던 보기 지문을 담은 원문과 또 다른 고전 아니면 육법전서 따위를 따로 짬을 내가며 읽느라 꽤나 고생했다. 그런데 한 두 번 그렇게 해 봤더니 참 즐겁고 행복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마 지적 호기심 충족에 따른 행복감(euphoria) 또는 정화(catharsis)이었으리라!


조선의 선비가 일러준 독서의 즐거움이 바로 그런 것이라 믿고 오늘도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쓸메끼리, 와사비, 와리바시는 일본 말이라 쓰지 말자 한다. 그리고 민법이나 철학 따위의 학문 용어가 일본식 한자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우리 글자로 모조리 바꾸자 한다.


내 눈엔 모두 목청껏 핏대만 올리는 외눈박이 국수주의자 또는 애국주의자들의 속 좁은 짧은 생각으로만 보일뿐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지금 쓰는 우리말 『진다, 된다, 되어진다, -에 있어서, 의, 와의, 과의, 에의, 로의, 의로의, 에서의, 로서의, 의로서의, 로부터의, 으로부터의, 에로의, 에게서, -에 다름 아니다, 의하여, 속속, 지분, 애매하다, 수순, 신병, 인도, 입장, 미소, 미소 짓다, 그녀』가 모두 일본 말의 불순물임을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말을 모조리 빼고 우리말로 글을 써라는 글짓기 대회를 열면 몇이나 붙을까?


이오덕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신영복 선생이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에서 한 생각으로, 이원수 선생의 『나의 살던 고향은』 은 내가 살던 고향으로 바꿔야 참 우리말이 된다고 한다.


​1940년대 이후 나온 우리 문학작품이 거의 이렇다고 하는데 다른 학문분야는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 이것을 읽고 그대로 흉내 내며 ‘나 글 잘 써요’하며 우쭐대는 우리는 또 어쩌나! ​그 밖에 또 중국 말과 서양 말의 불순물이 끼어있지 않는 현대 문학작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영어 번역투 문장과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처도 모르며 오가는 말들도....


(똑바로 터 놓으면, 이것 때문에 나는 남의 글을 우리 글로 옮기거나 베껴 써 놓으면 재미가 떨어져 잘 안 본다. 그래서 영어를 죽도록 배운다)


어차피 마음먹고 우리말 살리기를 할 요량이라면 작은 것을 펄쩍 넘어 큰 틀을 보고 아예 통째로 바꿀 생각을 해야지, 쩨쩨하게 왜 그러시나?

하루빨리 이오덕 선생의 저작을 모두 읽고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보고 조동일 교수의 저작으로 하나씩 배워가야겠다.




고전 짜깁기나 여러 가지 지식을 넓고 얇게 엮은 여러 가지 베스트셀러들을 많이 본다고 한다.


이 책들만 보고 원본(Original Text)을 다 읽은 것처럼 하며 우쭐대는 독자가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다. 그들 가운데 원본이나 번역본을 가릴 것 없이 Original Text를 몇이나 읽어 봤을까?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책들은 원문을 배우는 길에 처음 들어서거나 할 때 마중물의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러나, 글을 쓴이도 그런 말을 안 할뿐더러 읽는 이도 생각이 거기 까진 못 미친다.


오래전에 철학책을 번역서로 읽어보려 했으나, 겨우 몇 페이지만 넘겨보고 그만두었다. 읽는 것이 힘들어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똑같은 책을 영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이해가 잘되었다. 그때부터, 번역에 뭔가 잘못이 있음을 느끼고 서양철학과 사회과학을 영어원서 또는 영역본으로 독학하는 중이다.

철학이 매우 재미있는 학문이다.


​설마, 그런 책을 쓴 이들은 원본을 다 봤겠지. 철학이나 사회과학 번역이 오류투성이라 하던데. 가령, 인문고전을 번역본(해설서)을 통하여 A(원문)를 a(번역본)도 아닌 b(중역본)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며, 겨우 한번 읽고 나서는 A를 읽었다는 착각을 많이들 하던데. 다들 영어나 한문 실력이 출중한가 보다.


그리고 고전은 읽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된다 한다. 주희나 퇴계나 다산이나 율곡은 그들의 시각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었을 뿐이니 나도 다른 책들을 그리 읽어 봐야겠다.


에라 모르겠다! 내나 큰 숲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까지 보면 되지 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물어온다. 민법을 쓸데없이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법과 친족•상속법을 왜 다 보냐고. 자기는 무슨 시험을 쳐봐서 총칙은 빠삭하다 하면서. 민법은 판덱텐 체계라 어느 하나만 보게 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라 전체가 절대 보이지 않을 텐데. 민법과 자본론의 더 큰 관계를 물어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또, 헌법과 형법과 민사소송법 그리고 행정법을 모두 보냐고도 묻는다.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 해서 바빠 죽겠는데 자꾸 귀찮게 물어온다.


그래서 난 속으로 ‘그저 빙긋 웃지요!’한다.


근처 숲이나 가서 나무나 풀을 뚫어지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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