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학벌이 좋거나, 영어를 잘하거나, 직업이 ~士(事, 師)로 끝나는』 이들을 마주할 때는 그들의 실력 따위는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덮어놓고 떠받든다.
참말로 못난 짓한다!
역사를 공부해 보니, 이 모든 것이 옛날부터 줏대 없이 큰 나라는 덤벼볼 생각 없이 무조건 섬기고 보는 못된 버릇(事大主義)에서 생긴 듯하다. 제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할지라도 잘 살펴보면 허점투성이 일 텐데, 지레 겁부터 먹는다.
내가 회사일을 하면서 겪은 비슷한 얘기와 이를 이겨낸 보기를 하나 보태본다.
분쟁조정업무를 하다 보면 의사나 교수 또는 교사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많이 마주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엘리트 지식인들로 불리며 보통사람들은 상대하기가 매우 버겁다. 그들 가운데 아주 못된 이들은 나 같이 모자란 사람에 대하여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아주 우월한 마음부터 갖는다. 그러다 보니 그 맞서는 쪽은 그들의 기세에 주눅이 들다 못해 그냥 쫀다. 대부분이 매우 지적이고 꼼꼼한 성격에 합리적인 처분근거를 요구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민원 응대는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도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가 찾아보았더니 그들의 최대 결점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것을 주지주의적 태도라 하던데.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만 뛰어난 사람들이라 분야별 전문가라고 불러주는대도 말이다.
아래에 소개하는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핵심내용은 이렇다.
고객(B)이 회사 소속의 투자자산운용사이자 자산관리사인 A에게 랩계좌(Wrap Account)를 이용한 자금 운용을 의뢰하였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서 보니 믿고 맡긴 자산에 아주 조금의 손해가 났다.
B가 A를 상대로 관리자의 관리소홀로 인한 손실이라 억지 주장하며 손해배상책임을 지라고 한다.
(적법절차에 따른 법률행위로 판단된 사건))
큰소리치며 욕부터 한다. 갑질이 몸에 밴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나오라 한다. 돈을 안 물어내면 여기저기 소문낸다 윽박지른다. 여기저기 감독기관과 부처에 아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한다. 자본(돈) 앞에서는 하는 짓은 모두가 평등하다. 그래서 돈 앞에는 장사 없다고 하나보다. 여러 서비스 직종에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은 그들 특히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행동을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속으로 삼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 모두 돈의 물신성(fetishism)때문이던데…
그러나, 자본론을 읽어 본 나는 다르다. 인간의 주체적 노동으로 생산한 상품-화폐-자본에서 인간 또는 노동 소외(alienation) 현상 때문에 도리어 그것들에 종속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이렇게 전도된 가치(소외)는 과학의 힘으로 물신성을 극복할 때 비로소 주인인 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마음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부자들의 갑질 응대를 오히려 즐긴다.
아니다!
모든 갑질을 은근히 즐긴다. 아마 그동안 터득한 철학과 법학과 영어공부의 효과가 이제야 비로소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
의연한 선비답게 차분히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상대보다 더 강해야 용서할 수 있고,
상대보다 더 가져야 베풀 수 있듯이,
사물의 지극한 이치와 본성을 꿰뚫고 또 깨닫고 있어야 상대의 그름을 바로잡을 수 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은 내가 더 똑똑하게, 소리 지르는 사람은 내가 더 크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면 원위치로 돌아오는 전략을 쓴다. 대신 절대로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가령, 상대를 깔본다던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던지 내가 무식한 것을 티 낸다던지…
1. 먼저, 일임형 종합자산관리계좌(Wrap 계좌)의 특징과 투자자산운용사의 노릇부터 살핀다.
일임형 종합자산관리계좌(Wrap 계좌)는 고객이 랩어카운트를 통해 맡긴 자산을 증권사가 알아서 운용하는 상품을 뜻한다.
투자일임계약에 따라 투자자산운용사가 고객 투자성향과 투자목적에 적합하도록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구성, 투자조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이다.
그래서 관련법령 등을 근거로 투자자산운용사(rap운용 전문인력)의 역할과 자본시장의 환경을 고려한 재량적 운용 그리고 분쟁 상품이 처한 특수한 사정에 따른 운용이라는 근거로 답변을 준비한다,
2. 효과적인 답변서의 구성방법을 찾는다.
위의 논리를 바탕으로 어떻게 답변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를 고민해 본다. 투자자산운용사와 의사라는 직업사이에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그곳을 찾는 까닭은 두 직업을 똑같은 하나의 선 위에 놓고 갑질하는 의사의 기를 꺾기 위함이다.
한참을 고민해 보니 두 직업사이에 전문가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그리고 둘 다 민법의 위임계약의 관계로 인한 선관주의의무를 다 했다면 의뢰인 즉 위임인이 입은 손해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가 퍼뜩 떠올랐다. 그래서 양자를 비교설명해 가며 답변을 작성하기로 했다.
가. 민법상 규정된 위임계약의 뜻을 풀어 두 직업 간의 공통점을 찾는다.
민법상 위임이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수임인은 위임의 본뜻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 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민법 제680조, 제681조).
위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식의 위탁매매(Wrap 계좌의 운용 포함), 변호사의 소송 및 의사의 진료행위 의뢰 등이 있다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세 개의 직업, 곧 투자자산운용사, 변호사, 의사를 동급으로 만들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만 법리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바로 이거다! Eureka!
나. 투자자산운용사의 자산관리행위의 본질을 자세히 설명한다.
위임을 포함한 관련법령을 해석•적용할 때, 본건의 자산관리행위는 전문가인 투자자산운용사가 투자자로부터 계약기간에 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임받아 금융투자상품을 취득, 처분 그 밖의 방법으로 운용한 사항이다.
다. 이어서 의사의 진료계약에 따른 진료행위의 본질도 설명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채무와 같이, 성의를 다하여 치료에 필요한 행위를 다하기만 하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비록 치유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하더라도, 의사의 채무는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 즉 변제로 인하여 소멸한다.
(민법 제390조 본문 참조)
3. 결론은 둘 다 같은 논리로 귀결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투자자산운용사의 자산운용행위와 의사의 의료행위 그리고 변호사의 사건 수임행위는 관련법령등에 따라 적법하게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면 의뢰인이 위임한 계약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마무리 짓는다.
그래서, ‘계약상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한다.
그 답변서를 서면으로 받은 민원인이 나한테 전화해서 “선생님은 혹시 변호사이신가요?”라고 묻는다.
나는 “아닙니다! 원장님. 저는 행정사입니다.“ 하고 깍듯이 대답한다.
오늘따라 Sam Horn의 Tongue Fu!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을 찾아보고 싶어 진다.
자기 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만만치 않은 유형의 사람들과 그 대처법을 소개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번역서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는 읽어보지 않아서 추천을 하기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