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집을 나서고 들어갈 때 서재 가장자리 꼭대기에 있는 책 한 권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속으로 뭐라 중얼거린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다.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대학생인 아들이 묻는다. “아빠, 미국 주식이 앞으로 어떨 것 같아?"
“글쎄, 연준이 지난달 잠시 멈춘 금리를 이번에 또 올릴 것 같은데? 그러면, 빠질걸!"라 대답한다.
"그러면, 지금 바로 사야겠네! 아빠는 늘 반대로 짚잖아." 한치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돌하게 말한다.
옆에 있던 그분은 한술 더 뜬다. "니 아빠는 옛날 집값 오를 때도 계속 내린다 했다. 꼭 반대로 되더라.”
두 모자가 아주 작당하고 나를 놀린다. 늘 그래 온 일이라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
나는 늘 시장 전망을 거꾸로 해왔다. 그래서 금융회사에 다니면서도 주식이니 펀드니 부동산이니 코인이니 하는 따위와 담쌓고 산다. 그래놓고 고객에게는 투자권유를 잘도 한다. 내 주관적인 감정을 빼기 위해 마련한 미봉책이다. 아니면,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직무윤리나 철학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투자에 관하여 개인보다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기관 투자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많이 해 왔기에 주변인들에게 재산상 큰 손해를 끼친 일은 거의 없다.
사실, 내가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Nassim Nicholas Taleb가 쓴 『Fooled by Randomness』 를 읽고부터다.
제목 그대로 닥치는 대로 생긴 일에 우롱을 당한다는 뜻이다. 『The Black Swan』 에서 투자를 할 때 위험관리(Risk Management)를 중요시할 것을 강조한 저자가 이 책에서는 주식이나 펀드로 횡재를 한 사람들은 따져보면 무작위성(randomness) 때문이지 철저한 시장연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장한다. 물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내 맘대로 해석한 아주 좁은 해석이다. 어쨌든, 우리 말로는 『행운에 속지 마라』로 번역되었다.
국제 정치와 경제 뉴스는 누구보다 더 즐겨본다. 관심이 많으니 분석도 하고 예측도 해본다. 하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직접투자는 학을 뗀다. 젊었을 때 꽤 큰돈을 날린 탓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딱 그 짝이다. 옛날부터 고스톱이나 포커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당구나 골프도 내기를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누가 무슨 일로 내기할래 하면 손사래를 친다.
회사에서 아는 사람이 임원이 되었고 투자로 돈도 많이 벌고 또 다른 회사로 간 입사동기가 영업을 잘해서 수십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또 공무원이던 대학 동기가 고위 직급으로 승진했다고도 하고 지인의 자녀가 아주 잘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비슷한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배도 많이 아팠는데 이제는 모두 무덤덤하다. 만나게 되면, “축하해!”라는 한마디만 하면 모두 사라진다.
거의 수도승의 경지다.
그래서 그들처럼 돈을 많이 벌려고도 또 높이 올라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 나 아닌 다른 이를 통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따위의 못된 욕심은 절대 내지 않는다. 그 대신 잘 나가고 잘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한때는 나보다 잘난 이들을 보고 스스로를 몹시도 괴롭히고 또 모질게도 굴어 봤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아래의 사실을 알고 나서는 모든 게 다 뻘짓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언제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늘 무덤덤하게 살게 되었다.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법행위 또는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지 않고 큰돈을 번 사람들을 거의 못 봤다. 또한 남을 밟거나 등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큰 명예를 얻은 사람도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발이 좁기는 하다.
어쨌든, 쓸데없는 욕심을 모두 버린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래처럼 겉으로 그럴듯한 핑계를 꾸며본다.
내가 그렇고 그런 무리들 앞에서 늘 당당한 까닭은, “자본의 물신성과 사대주의 극복”을 위한 독보적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들이
“획일적 자본주의 제도(삶에 꼭 필요한 금융과 법률공부를 쏙 뺀) 교육과
식민사관(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다수가 친일파 작가의 문학작품) 교육과
엉터리 영어교육 (문제 풀이식 또는 발음을 좋게 하여 말만 잘 지껄이면 되는 줄 아는 그런 과정) 따위”
로 배워 권력을 세운 그 체계는 곧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 보므로 굳이 그들을 올려다볼 까닭이 없다.
이 모두가 인문학 공부 덕택이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인문학 공부를 하고부터는 나와 맞지 않은 일을 쓸데없이 쫓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내겐 훨씬 더 쉽다.
그렇고 그런 이를 부러워하는 일이 곧 내가 그보다 못함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지니, 그 알량한 마음이 사라져 간다. 하지만, 아직도 내 곁에 머무는 것들이 조금 보인다. 그쯤은 봐줄 만하다!
또, 사서삼경(四書三經)과 David Hume의 A Treatise of Human Nature과 Adam Smith의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펼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