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에 있는 섬에서 자기의 앞날에 놓인 일들을 그려가며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A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2000년 초반에 우리나라에서 아주 큰 금융회사를 외국에서 이름난 아주 큰 회사가 인수했다.
마땅히 CEO를 비롯한 주요 임원직과 직무상 중요한 자리를 외국인 또는 해외유학파 출신들이 모두 차지하였다. 국내 회사의 권력구조만을 옆에서 지켜본 A가 받은 문화적 충격이 엄청 컸다고 한다.
당시 한국형 권력구조의 전형, 즉 학벌계급의 서열화의 모습을 갖추고 있던 A가 다니던 회사의 조직도는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겪는다.
자세히 말하면, 영어를 기준으로 Native Speaker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해외 유학파 그룹과 통역사들이 모두 한 자리씩 맡았으며, 나머지는 기존 체제를 그대로 놔두었다.
이러한 구조는 역사책을 통해 살펴본 일제강점과 미군정기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 우리 사회의 구조와 많이 닮아 있었다.
나머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영어라는 장벽에 부딪혀 통역사 또는 CEO 비서한테도 쩔쩔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30대 초반이었던 A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좁은 한반도 안에서 일컫는 실력과 스펙은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아마, 외국인들의 눈에는 국내 대학의 서열과 우리네 영어 실력이 모두 도긴개긴으로 내비쳐졌을 듯하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큰 변화를 그리며 다른 대체가치를 스스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앞으로의 변화를 그려보니, 해외유학파의 국내 유입증가로 웬만한 영어실력으로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겠고, 또한 이미 굳어져 변하지 않을 구조, 곧 학벌계급의 서열화 타파도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고 그런다.
영어는 주로 외국계기업 구조의 주요 무기이고, 법학은 국내기업 구조의 주요 무기인데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어나 법학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사람은 철학적 사고가 부족하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별다른 근거 없이 그냥 그렇게 믿고 싶기도 했을 수도 있으나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엘리트 법조인 출신 정치인을 보거나 또 김종영 교수의 책 ‘지배받는 지배자’에서 나오는 해외파를 보면 또 A의 말이 얼토당토않은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가치가 바로 현상이 아닌 본질의 탐구 토대가 될 학문인 철학•법학•영어를 공부하여 “큰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낱낱이 옮겨보면, “철학은 영어 원서로 공부를 하면 제아무리 Native Speaker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되는 그야말로 제대로 맞서볼 무기가 될 듯하였다. 게다가, 세 가지 모두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에 엄두를 낼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멀리 보고 이들에 대한 대체가치에 집중투자하기로 하며 열심히 달렸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나중에 국내 대기업집단의 금융회사에 다시 인수되며 A가 그리던 그러한 세상은 오지 않았다. 또 조직은 그 옛날의 모습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A의 내면은 많이 성장해서 이젠 혼자서도 우뚝 설 힘이 생긴 듯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동안 갈고닦은 철학과 법학과 영어를 자기 수양의 도구로 활용하며 언젠간 큰 바다로 나갈 큰 고래 한 마리를 가슴속에 키우고 있다고 한다.
큰 장맛비가 쏟아지는 오늘도 A는 스스로 세운 그 길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