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수 교수의 민법 교과서 계약법 713쪽 판례인 변호사가 위임받은 형사사건에서 이른바 성공보수 약정의 유효 여부: 대판 (전) 2015. 7. 23. 2015다 200111을 읽다 말고 생각한다.
시험 공부도 아닌데, 내가 왜 지금•여기에서 골치 아픈 판결문 원문을 또 그 어려운 고전을 원서로 읽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글을 읽고 깨달아 아는 힘인 문해력을 높여 어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 본다.
그러고는 남은 것 마저 읽어 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다가 뭔가 특별하게 깨달은 일이 있으면 내 생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남들한테 말해본다. 주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넌지시 그 내용을 던져본다. 대체로 다른 곳에서는 거의 못 들어 본 그런 내용들이다. 좋은 뜻으로 논리적 근거까지 들어가며 얘기를 해보지만 듣는 쪽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한테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그런지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 대부분 조금 더 들어 보다가 곧 딴죽을 걸어온다.
주로 한국의 현대사와 비주류 경제학, 민법 그리고 영어 공부 방법론과 같은 것들이다. 가령, 민법 공부를 할 때는 누구나 알기 쉬운 민법 책이나 수험서 또는 요약집 같은 것만 보지 말고 앞의 것을 다 보고 그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반드시 민법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그 체계를 조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법률을 공부할 때, 민법을 바탕으로 바닥을 다지지 않으면 다른 법률 공부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라고 보탠다. 쉽게 말해, 민법은 큰 나무의 뿌리와 줄기에 해당되고 나머지 법률은 곁가지와 이파리 또는 열매 따위라고 말한다.
하지만, 열을 올려가며 아무리 설명해도 맞은 쪽은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고 또 시험 점수를 잘 받았기에 다 안다는 표정이다. 주로 내 주변에 있는 공인중개사나 세무사 또는 공인노무사 시험 따위의 합격자들이 주로 그렇다. 그들 모두 시험과목에 민법총칙이나 부동산 중개 또는 영위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민법 전체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편철한 과목들이 있는데 모두 객관식 시험으로 본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다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공부 가지고 세상 다 아는 듯이 말한다.
변호사나 법무사도 또 다른 의미에서 마찬가지다. 이들은 육법전서가 세상 공부의 모두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정법을 포함한 법학을 배우고 나서 철학과 역사와 같은 인문학 공부를 하면 세상을 훨씬 더 넓고 깊게 볼 텐데. 우리 주변의 몰지각한 법조인 출신 엘리트들을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설명해 보려다가 자칫 잘못하면 말싸움만 더 생길 것 같아 알아서 그만둔다. 굳이 말해서 뭐 하리 내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 것을.
두말하면 잔소리지.
오늘 할 얘기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얼마 전에 유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문해력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출연자는 어느 대학교수인데 요즘 청소년들이 우리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어휘 같은 것 (시나브로, 을씨년스럽다, 샌님, 대관절 따위)을 많이 몰라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주요 이유로는 책을 많이 읽지 않고 YouTube 영상이나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문제풀이식 공부만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출근길에 전철을 기다리는데 바로 옆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떼 지어 있다.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책을 보는 척하며 은근슬쩍 들어본다. 한 아이가 그런다. “오늘 아침에 공복에 빵 하나 섭취했더니 ㅈㄴ 힘드네. 아휴 빡쳐” 그나마 이들은 양호하다. ‘ㅈㄴ’ 뿐만 아니라 ‘ㅇㄴ’ 나 ‘헐’ 또는 ‘대박’ 따위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상 언어가 된 지 오래다. 카톡이나 회사의 메신저에서도 나타나 더 이상 이것을 안 쓰면 미개인 소리를 들을 정도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 모두 저래서 애써 책을 펼칠 까닭이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이 모든 문제는 책을 많이 읽지 않은 탓이며, 이는 바로 문해력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언뜻 보기에 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의 사설조차 읽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와 같은 시사 정보는 어디서 얻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YouTube를 많이 본다고 한다. 하다못해 웬만한 책도 그 영상에서 남들이 다 읽어 놓고 지 생각을 간추려 알려주는 것을 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책이나 기사에서 지식과 정보를 주입식으로 습득하려는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보다 많이 모자란 내가 제대로 맞서 보려고 문해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붓는 것이다.
오랫동안 철학과 같은 인문학 고전을 조금 읽어봤는데 그 안의 지식만을 습득하는 단순한 목적은 책을 읽으나 마나 한 것 같다. 가령, Karl Marx의 Capital을 읽는다면 자본의 생산•유통•자본의 총생산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본의 운동 법칙은 물론 물신성,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금융론, 지대론 그리고 공황론과 같은 지식 습득 만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저자가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전개한 논리적 근거 방법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같은 것을 알아내서 현실에서 다른 일을 할 때 써먹어야 한다. 또 헤겔의 정신현상학 같은 것은 변증법 체계의 정수다.
민법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안에 나오는 세세한 내용의 이해는 물론 주요한 법익의 침해에 대한 구제받을 권리인, ‘손해배상청구권 (채무 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물권적 청구권(방해배제, 목적물 반환, 방해 예방), 비용상환청구권, 부당이득 반환청구권’의 뼈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현실에서 이들을 잘 써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또 내용의 줄거리가 무엇인지에 만 매달리다 보니 그 어려운 책을 애써 다 읽고 나서도 결국은 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남들이 퍼다 주는 밥만 누워서 떠먹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생각이 넓어지기는커녕, 도리어 더 좁아서 나중에는 갈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아주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강의 동영상만 실컷 듣기만 하고 따로 자습을 하지 않으면 시험장에 나서서 과연 몇 문제를 풀 수 있었던가?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민법도 그렇고 철학도 그렇고 그 어려운 책들을 읽는 까닭이 문해력을 더 높여 내 앞에 마주하는 삶, 곧 개인과 가정과 회사의 일들을 모두 잘 처리하기 위한 이론적인 잣대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진작부터 알고 공부했으면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를 보냈을 텐데.
그러나, 실망할 것 없다.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알고 다시 마음가짐을 갖추면 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