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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한테 배운 독서법

by 들풀생각


2023년 7월 28일 금요일 오후 16시 30분, 바깥 온도는 모름, 사무실 실내 온도는 26도로 추정


ㅇㅇ헤어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18:40분 약속을 내일 오전 11:00으로 미루어 달라고 한다. 일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따로 물어보지 않고 흔쾌히 승낙한다. 참 쉬운 고객으로 보일 듯하다. 살면서도 독서 빼고는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다만 내 겉모습이 그렇게 보여서 아쉬울 따름이다. 잘 처신하며 살아야겠다.


​진작 전화를 주었으면 오늘 아침에 전화한 친구나 만날 텐데. 미장원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집에나 가서 화장실 청소나 해야겠다.


같은 날 저녁 17:30분, 바깥 기온 30도, 체감 온도 34도


즐거운 불금, 퇴근길 전철 안이다.


​방송에서 객실 전원 공급장치 고장이라고 한다. 조명도 많이 어둡고 냉방 장치도 최대한 크게 틀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트나 마나다. 푹푹 찐다. 긴팔 셔츠를 입어서 그런지 땀이 많이 난다. 그래도 옆 사람한테 팔을 닿게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숨을 쉬기도 만만치 않다.


​바쁘지 않은 승객은 내려서 다음 열차를 타라고 한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밀리고 또 크게 소리 지르는 어르신들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또 스마트폰 소리를 크게 틀어 놓고 게임하는 젊은 여자가 바로 내 앞에 앉아있다. 뿅뿅뿅!!! 그 옆에는 동작이라며 곧 사당역에 내릴 것이라 큰 목소리로 전화하는 젊은 학생도 보이고 또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는 여성도 있다.


​분명 꼰대는 나처럼 나이가 든 사람 가운데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이와 성별과 지위를 뛰어넘어 모두가 평등하다.


법과 나이 그리고 꼰대짓 앞에서는 모두 평등한 세상, 만세!!!


​나는 주변 상황에 아랑곳없이 The Economist의 Business Sector 칼럼 Schumpeter (Stars v suits)를 읽는다.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다. 눈 빛이 종이의 뒷면을 뚫을 기세다. 평소 날씨가 아주 덥거나 춥거나 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자유 공원을 달리고 걸은 덕택이다.


​이 또한 수양이라 여기고 글의 내용에 집중한다.


​몸과 맘을 가지런히 하여 얼을 한 곳에 모으니 글도 술술 잘 읽힌다. 속 뜻이 흐릿해 한번 더 읽으니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시원한 마음까지 든다. 피서지가 따로 없다.


내가 있는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독서법은 퇴계 이황 선생을 Role Model로 한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퇴계의 독서법에 관한 일화를 인터넷 어디선가 보고 간추린 것이다.


​I. 독서에 관한 퇴계의 일화


​찌는 듯이 무더운 한 여름날, 방문을 굳게 닫고 끼니때 말고는 아예 바깥에 나오지 않고 ‘주자전서(朱子全書)’ 한 질을 되풀이하여 읽었다는 퇴계,


​​건강악화를 우려한 친구가 독서는 생량(生涼) 후에 하기로 하고 산수 좋은 곳으로 피서나 다녀오자는 제안에,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고 있으면 가슴속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 깨달음이 느껴져 더위를 잊게 되는데, 무슨 병이 생기겠는가? ​

이 책에는 무한한 진리가 담겨 있어 읽고 또 읽을수록 정신이 맑아지며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를 뿐이네!”


이어서,


​“이 책의 원주(原注)를 읽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학문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알고 나니 이 책을 읽는데 더욱 흥이 일어나네.

​이 책을 충분히 터득하고 나서 다시 사서(四書)를 읽어보니 성현들의 한 말씀 한 말씀에 새로운 깨달음이 느껴져서 이제야 학문하는 길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네!"


​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II. 퇴계의 교훈을 되새김


​퇴계는 어릴 때부터 글 읽기를 무척 좋아하여 늘 책을 가까이했으며, 바른 자세로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담겨 있는 참 뜻을 완전히 터득하기 전에는 무슨 책이나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거푸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은,


​‘반드시 성현들의 말씀과 행동을 본받아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바른 자세를 하고 주자전서 대신 Karl Marx의 Capital과 민법을 펼치며 이해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정독을 한다면, ​

퇴계 선생이 가르쳐 준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 굳게 믿으며 오늘도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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