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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풀생각 Aug 09. 2023

담쟁이덩굴과 문학 공부


얼마 전 한 블로거가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담벼락에 붙은 담쟁이덩굴을 없앤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을 봤다. 속이 비고 넓기만 하여 매우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민주주의 절차인 투표를 해서 결정한 일이라 찬성과 반대하는 쪽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게 맞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리성 또는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본성인 감성을 눌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담쟁이덩굴을 없앤 모습을 보니 더운 날씨가 더욱더 더워 보인다. 물론, 한 겨울엔 더욱더 추워 보이겠지!


내 일이 아니라 난 빠질란다.​




David Hume의 『A Treatise of Human Nature』에 나온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뜻을 되새겨 법학과 경제학에 이어 인문학 공부마저 그 틀을 어설프게나마 갖춰보려 한다.


인문학이란 사람(人)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최진석 교수를 따라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해석하고자 한다.


​인문학이란 ‘사람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하여 ‘나는 누구인가?’로 귀착되는 지적 성찰의 긴 여정을 거쳐야 하는 학문이다. 인문학 공부의 과정에서 우리는 인류의 조상들이 지난날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지를 고찰하여야 한다. 대표적인 학문 분과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있다.


학문별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철학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구상력을 갖추어야 하고,

​역사로 과거에 대한 반성적 통찰력을 가져야 하며,

​문학으로 현재 적용할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법학과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역사 공부를 하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듯하다. 물론, 내 기준에서이다.




이제 남은 하나는 문학 공부다.


​문학은 소설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셰익스피어 수업을 들으며 이건 무슨 초등학생이 용비어천가를 배우는 격이라 지레 겁먹고 문학을 포기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전공 필수 과목인 문학을 포기하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


자구지책으로 실용영어 곧 시사 영어와 영작문 그리고 생활 영어로 커리큘럼을 아무리 짜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교과 과목의 3분의 2이상이 시나 소설  그리고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으로 이루어져 4년 내내 장학금은커녕 평점이 낮아 늘 열등생의 반열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늘 시험 때만 되면 영문학과 학생들이 원서 대신 번역본을 보고 또 졸업생 가운데 영자신문과 잡지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학점을 포기하고라도 제대로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이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이 꽤 많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꿋꿋이 경제학과 법학과 같은 실용 학문을 독학으로 배우며 4년을 꾸역꾸역 보냈다.


​한 번은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남들은 다 장학금을 타 온다꼬 하딘데 니는 왜 글노?”라고 물으시길래, 우리 학교는 학점을 안 주기로 소문이 난 곳이라 그렇다고 둘러 대기도 했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 걸로 봐서는 분명 아들의 뻔한 거짓말을 눈치채고 학생운동과 같은 딴 길로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는 듯했다.


​​어쨌든 그랬다. 내가 문학을 그토록 싫어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게 문학이 싫다던 내가 철학과 역사와 그리고 이들이 반영된 시사를 공부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려놓고 나서 보니 이제야 문학을 찾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바로 Wordsworth나 Shakespeare의 고상한 작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 대신 자본주의 철학 소설인 Ayn Rand의 Atlas Shrugged을 깊이 따지며 빠져 볼 생각이다. 이 책도 사실은 이 소설을 소재로 만든 영화를 YouTube로 이미 보고 세 번째 읽고 있는 중이다. 원서 기준으로 무려 1,168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미국 자본주의 정신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철학소설이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본다 하니 그들을 제대로 알아볼 아주 좋은 기회다. 자본론을 비판할 대안으로도 생활영어를 배우기에도 아주 좋은 교재로 보인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문학작품의 저변을 확대해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두루두루 배워 인문학의 틀을 제대로 갖춰봐야 하겠다. 그리고 내가 세운 공부의 화두인 “자본의 물신성(fetishism)과 사대주의의 극복”에 한 발 더 가까이 가도록 온갖 힘을 다 쏟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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