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Complex)란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이다. 다시 말해,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이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심리적 매듭 뭉치라고도 한다. 마음속 응어리와 비슷하다.
열등감도 그렇다고 우월감도 아닌 그 무엇으로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성 같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정을 애써 숨기거나 없앨 대상이 아니라 꾸준히 관리하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콤플렉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면, 스스로 깨닫고 인정한 나의 약점은 더 이상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로 노자의 《도덕경》 첫 장에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 하며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라 한다. 아무튼, 콤플렉스는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지만 촉진할 수도 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서 뛰어난 사람이 된 역사적 사례를 곰곰이 생각했다. 콤플렉스가 오히려 그들이 뛰어난 업적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영감의 뿌리가 될 수도 있었다. 바꾸어 말해 관심과 노력에 따라 콤플렉스를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콤플렉스는 내게 극복하라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어제나 오늘 보다 더 나은 나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런 성찰과 실천 덕택에 작으나마 마침내 그 열매를 맺었다.
1988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챙겨 왔던 영어 콤플렉스를 이제야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를 돌이켜 보니, 사전 없이는 Korea Times를 거의 읽을 수 없었다. 원서 읽기는 아예 엄두도 못 냈다. 당연히 AFKN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영어회화 수업에 외국인 강사와 말을 섞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늘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남의 말을 이리저리 잘 옮겨가며 전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문제도 잘 풀어 토익 성적도 높게 나오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이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영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영어 콤플렉스를 이겨내고자 이 모두를 아우를 뭔가를 찾아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본 결과 영자신문 그것도 금융과 경제와 관련한 사설과 잡지의 칼럼 그리고 사회과학 철학을 원서로 술술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아무리 영어의 달인인 동시통역사 또는 번역가나 교포 2세 또는 원어민 학원 강사라고 해도 여기 까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굳이 돈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쓸데없는 곳에 돈과 시간을 쏟아부을 까닭이 없었을 듯하다. 기본을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한다. 어쨌거나, 그들 대부분은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 따위에서 머무르고 더 나아가지 않은 듯했다. (국내에선 그 정도만 해도 다 알아주니까!)
그래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고전을 위주로 정치•경제학은 저명한 학자가 쓴 최신 베스트셀러를 보태며 한 권 두 권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버티며 이겨낸 세월이 21년을 훌쩍 넘는다.
주변 사람들이 영어 공부가 잘되어 가냐고 묻는다. 나는 그냥 신문과 잡지와 책을 읽고 뉴스를 볼 뿐이라고 말한다. (속으로 ‘재수 없네!’ 했을 터이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생각을 버린 지 꽤 오래다. 세상을 듣고 읽으며 배울 뿐이다. 원서가 아닌 책들은 법학 책을 빼고는 아예 읽지 않는다. 별 재미도 없고 논리도 정연하지 않고 왠지 남의 나라 사람 말을 그대로 베껴 쓰고 옮겨 놓은 듯한 인상마저 든다.
그래서, 순수한 우리의 사상과 감정이 오롯이 깃든 문학작품 빼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책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블로그에서 이웃님들이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낸 글을 읽는다. 이게 오히려 내 정신 건강에 좋다. 초여름 아침 짙은 물안개를 머금은 주산지에서 지느러미를 퍼득이며 하늘을 향해 힘껏 솟아오르는 잉어의 거친 숨결과도 같다.
산은 타라고 있는 것이고 슬럼프나 콤플렉스는 이겨내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