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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달림, 그리고 칼과 방울

by 들풀생각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아침 8시다.

바깥 날씨가 꽤 추워 보인다. 표현력이 부족해 위의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오늘도 갈 거냐? “고 그분이 물어오신다.

갑자기 코오롱 스포츠 김태리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영상 속에서 김태리는 평생 겨울에 딱 한 벌만 입으라고 한다면 ‘물어서 뭐 해!”라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답한다.

어쨌든 이러저러 준비해서 나왔다. 정말로 춥다.

일단, 세탁소에 옷을 맡긴 후 날마다 걷고 달리는 공원으로 나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파트 근처에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다. 특히, 나와 같이 수도승을 흉내 내고자 하는 이에겐 안성맞춤이다.

공원을 둘러싼 트랙의 총길이는 1.72km인데 두 바퀴를 달리고 한 바퀴는 걷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을 풀려고 공원내부에 조성한 낮은 산의 둘레길 1.3km를 걸으며 마무리한다. 그리고 스타벅스로 가서 Venti Size의 커피를 Take Out 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약 10km의 거리가 된다.


참고로, 나는 얼·죽·아는 죽어도 안 한다!

평일에는 둘레길이 어둑해서 남들이 오해할까 봐 돌지 못하고 공원 주변의 트랙만 돈다. 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을 달리고 금요일엔 하루 쉰 후, 토요일과 일요일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렇게 한다.

오늘은 다른 날과 견주어 날씨 환경이 많이 다르다. 일단 춥고, 눈이 쌓여서 바닥이 미끄럽고 습기가 차서 안경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 수양하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이런 날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말 그대로 주일무적(主一無適) 해야 한다.


주일무적이란, 중국 송나라의 정주(程朱)의 수양설(修養說)로 정이가 처음에 주창하고 주희가 이어받아 주장한 것으로 마음에 경(敬)을 두고 정신을 집중하여 외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친다. 특히 눈이 얼어붙은 얼음길을 달리거나 산둘레를 돌 때는 모든 생각을 접고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 방법은 조선 중기 사림의 대부이자 조선 선비의 전형으로 유교 교육의 대표적 성공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칼과 방울의 수양과 실천에서 모방했다. 그분은 스스로를 경계하려고 늘 두 가지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한 여름날 체감 온도가 40도를 넘을 때에도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달린다.

몸과 맘과 얼을 한 곳에 모아서 더 넓고 깊게 나가가는 방법은 독서법에서도 여지없이 적용한다. 특히, Financial Times의 The FT View와 The Economist의 Leaders를 읽을 때는 물론이고 민법교과서와 영어원서 읽기에 모두 똑같이 적용한다.

얼마 전, 전철의 경로석에서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조선일보의 사설을 접어서 읽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안경도 쓰지 않으신 채 신문을 접어서 꼼꼼히 읽고 계셨다.

물론, 나도 영자신문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만 노신사분이 너무도 부러웠다. 왜냐하면, 그 나이가 되면 나도 저 어르신처럼 눈이 잘 보일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중 초점렌즈로 글을 읽고 있으나 전철의 불빛이 흐리거나 바깥 날씨가 어두우면 한글보다 긴 영어단어가 아른거려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눈이 잘 안 보여 글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솔직히 지력이 약해 문맥을 모른다고 말하련다.


이제부터는 글을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야 하는 나이다.​

“대충대충, 듬성듬성, 빨리빨리” 대신, ​

넓고 배우고 깊게 물어 신중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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