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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or가 Mentee에게

by 들풀생각
늘 그렇듯이 내가 쓰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를 빼고는 주제에 어울리게 우리 주변에 늘 있을 법한 가공의 인물임을 미리 밝힙니다.


신문 기사, 그것도 신문의 사설을 분석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애써서 될 일이 아니다.


하물며, 영자신문 그것도 Financial Times의 사설을 분석하여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영어공부를 통하여 세상을 알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해 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냥 한 번 스치듯 읽고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FT의 논설이자 사설인 The FT View를 분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2005년 4월에 내가 속한 본부에 신입사원이 들어온다. 그는 서울 소재 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에 학점은 4.0, TOEIC이 950점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인재라 불린다. 본부장이 나에게 신입직원의 Mentor가 되어라고 한다.


흔쾌히 받아들인다.


외국계 금융그룹에 인수된 우리 회사는 선진 인사제도 중 하나인 Mentor & Mentee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Mento인 나의 주요 임무는 회사의 지침(Guideline)에 따라 부서별 특성에 맞게 재량껏 Mentee가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멘토들과 달리 나는 그동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계 회사의 특성에 맞춰 Mentee의 영어실력의 기반을 닦아주리라 마음먹는다. 비록, 지침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인생의 선배로써 응당 해야 할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 지니고 있던 이 나라의 그릇된 영어 교육의 실제효과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그 대안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이야기는 내가 학교 다닐 때인 1988년도 일이므로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요즈음 입사하는 젊은 사원들도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도 영자신문을 보는 이를 거의 못 봤다. 어디선가 보겠지 하며 ‘라떼랑 다르다!‘고 믿고 싶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영문학도가 문학을 원서가 아닌 번역본으로 읽는다는 사실과 그들의 약 90% 이상이 졸업 후 영자신문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국내의 최고 대학교 영문 또는 영어학과 출신도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혹시, 대상자가 이 글을 읽으신다면 댓글로 반박하시길 바란다.


내가 Mentee를 상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TOEIC 고득점자의 진짜 영어실력 파악이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한국식 영어평가 특히 토익성적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영어실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로 그러한지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다.


그리고, 금융회사에서 영어를 잘 쓰려면 자료를 잘 읽고 바르게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외국의 유수기관이 발행한 경제전망 또는 산업 섹터별 리서치 자료를 수시로 읽고 자기만의 통찰력(Insight)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CNNBBC 그리고 Bloomberg News를 잘 듣고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나의 멘티를 통하여 우리나라 영어실력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나의 영어 실력 다지기를 위해 이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꼰대가 틀림없다.


그때의 그 멘티는 지금은 다른 회사에 있으며 나와 자주 만난다. 그러나, 영어는 별도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후회한다고 하소연한다.


서로의 소개도 하고 회사의 기본 생활에 대하여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과제를 내주었다.


과제는 The Korea Times의 당일자 Editorial을 출력하여 주고 1시간 이내에 내용을 요약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물론, 단어 등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검색하라고 했다. 시험이 아닌 실전으로 말이다.


신문사설의 내용은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에 대한 것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이에게 매우 어려운 주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시간 후에 멘티가 제출한 자료를 보니 역시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지면에서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딱 한마디만 보태자면, ’TOEIC점수와 영자신문의 사설 이해에 대한 피어슨(Pearson)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는 0이다!‘이다.


외국계 회사였던 우리 회사는 미국 현지 본사와 국내에 상근하는 외국인 임원들과 소통을 위하여 통역사도 여러 명을 채용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영어실력 또한 바로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실시간 통역과 번역 그리고 발음은 모두 출중했다. 앞서 언급한 TOEIC 고득점자인 멘티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서 내가 감히 덤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쨉이 되질 않았다.


한국에서 상관례로 규정된 영어능력 평가부문에서 내가 설자리가 없어 보였다.


언어 공부라는 것이 오랜 세월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부터 저들을 쫓아 말하기, 남의 말을 옮겨 적기와 하기 그리고 TOEIC에서 좋은 점수받기를 하려면 넉넉잡아 수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성과를 낸다 한들 ’원어민의 눈으로 보면 통역사나 영어로 말 좀하는 사람이나 초등 6년생과 1년생의 차이 밖에 더 나겠는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른의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 피차일반이겠지!


한동안 앞으로 해야 할 영어공부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계 임원들에게 날마다 배달되는 Financial TimesWallStreet Journal 여유분을 비서가 주길래 읽어 보았다.


독해 소감을 말하자면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헤드라인을 비롯한 일반 기사도 어려웠지만 사설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세상을 너무도 좁게 보며 자만하며 살아왔다는 죄책감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내가 멘티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이 해서 스스로 과제를 내어보았다. Sub-Prime MortgageMonetary Policy(Quantitative Easing)와 같은 글로벌 금융경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해석은 되나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와 단어와 문장은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충격이 엄청 컸다. 멘토였던 내가 멘티에게 던진 충격의 정도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나에게 받은 그것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 임원과 함께 한 자리에서 Financial Times의 내용이 어느 정도 영어 수준의 글인지를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은, FT와 The Economist의 내용은 고급 중의 고급영어이며 원어민들도 전문직 계열에 종사하는 사람들 아니면 굳이 이 어려운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매일경제신문 매경이코노미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될 듯 했다.


너무나 솔깃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만약, 내가 The Economist의 핵심인 Leaders와 Financial Times의 사설(The FT View)을 제대로 읽고 이해한다면, 읽기 분야에서는 통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잘하면 원어민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여기에 보태서 철학과 같은 인문학을 원서로 읽어낸다면 금상첨화가 되리라 믿었다.

그 길로 나는 스스로 나의 멘토가 되어 나한테 FT의 사설을 분석하여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물론, 시간은 무한대다. 평생이 걸려도 좋으니 제대로 해보라 한다.


그렇게 시작한 미션(mission)이 벌써 18년이 되어간다.


2022년 1월부터 세계의 석학들만 본다는 고급 잡지인 The Economistfrom cover to cover로 읽는다. 그리고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정치•경제학분야의 원서를 읽어 내려왔더니, 이제야 The FT View의 분석 틀이 생긴 듯하다.


眼光紙背撤이라는 한자성어(일본식 말)이 있다. 눈빛이 종이의 뒷면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양주동 시인의 "안광이 지배를 철하다" 라는 말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갈길이 멀다!


그러나, 지금의 모양은 어설프겠지만,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으로 가다 보면 또 하나를 이루어 내겠지 하면서 가본다.


이번에는 아예 자본의 운동법칙(The Laws of Motion of Capital)까지 공부해서 자본주의 제도(Capitalism)를 제대로 이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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