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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Apr 09. 2024

ㅇㅂㅇ

  나무들은 작고 연한 초록 나뭇잎을 달고 있었다. 여린 바람에도 애써 핀 꽃잎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마주 오는 사람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풀썩, 몸을 들썩이는 꽃잎을 밟으며 스벅에 왔다. 입구 근처의 동그란 테이블이 겨우 하나 남아 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청바지에 흰색 반팔 티를 입고 두껍지 않은 진회색 카디건을 입은 다음 봄 점퍼를 걸쳤는데, 걸어오는 동안 땀이 났다. 어느새 봄이다. 


  지난가을부터 나는 소비를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철이 들었다기보다는 여건이 그래야만 할 상황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이것저것 사들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는지, 막상 자제하려니 힘이 들었다. 욕구불만을 푸는 방법을 따로 개발해야 하는데, 걷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방도가 없다. 

  게다가 나는 그 많은 요정 중에 소비 요정이다. 어떤 예감이나 예지력, 사람 보는 눈 따위는 없는데, 물건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허다하다. 예쁘거나 비싼 건 왜 그렇게 눈에 잘 띄는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사야 해'하며 나중에 등짝 스매싱을 당하더라도 당장은 생필품의 반열에 오른다. 아무려나 그래도 이성적인 사람답게 시늉은 하는 편이어서 금단현상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소비를 멀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소소하게 지른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당황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지출은 별만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은 엄청 궁상스러워졌다. 


  열흘 전인가. 한층 심해진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중에 지름신이 강림했다. 밤늦게 유튜브를 보다가 실버 귀걸이에 꽂힌 것이다. 유튜버들이 추천한 사이트에 들락거리며 구경을 하던 나는 새벽 세 시가 넘어갈 즈음 살짝 졸음이 몰려와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침대에 눕는 순간, 눈과 머리가 모두 말똥말똥 해졌다.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숫자를 세고, 좋은 생각을 하는 등 한 시간 반을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난 나는 노트북을 열고 눈앞에 어른 거렸던 귀걸이를 결제했다. 그러고는 거짓말처럼 잠의 문턱을 넘어갔다. 


  일주일 후, 고대했던 귀걸이가 왔다. 

  '앗!"

  ㅇㅂㅇ

  (왕방울)

  깜짝 놀랄 만큼 큰  실버 왕방울을 보고 망연자실해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결제 후 주문 제작 상품이라 교환과 반품이 불가하다'라는 문구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은이라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어쩌지. 

  처음이라 그럴 거야.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나는 당장 귀걸이를 착용했다.

  "뭐야, 그 미러볼은?"

  귀가하던 남편이 나를 보고 펄쩍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흥!"

  호들갑스럽기는. 

  "이거 요즘 유행하는 거라는데 할래?"

  나중에 들어온 딸들에게 물었다. 

  "극혐!"

  "반품해."

  각각의 대답이다. 

  "알았어."

  안되지만,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하는 수 없지. 누구 웃기거나 놀래고 싶을 때 해야겠다. 나는 귀걸이를 빼서 액세서리 함에 얌전히 넣어 두었다.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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