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정도는 아니잖아.
일을 하다 보면 늘 비슷한 순간이 온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오늘 넘겨야 하는 안,
지금 바로 정리해야 하는 문장,
당장 답해야 하는 수정 하나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그 안에 오래 있으면,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일에 잡아먹히는 것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때는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이번 것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래서 엄마에게 미뤄둔 전화는 다음으로 넘어가고,
친구와의 약속은 미뤄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서운함도 나중 문제처럼 밀려난다.
나는 돈을 받고 하는 일에는 예의와 염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대충 해놓고 상황 탓을 하는 태도도 싫다.
내 업은 적어도 내가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임감이 너무 쉽게 삶 전체로 번진다는 데 있다.
일에 대한 태도는 엄격할 수 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까지 가혹해질 필요는 없다.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과, 일을 위해 삶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배운다.
AI가 세상을 바꿀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오늘조차도.
특히 윗사람이 그러면 더 그렇다.
말로는 균형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가장 늦게까지 남는 사람이 인정받고,
언제든 연락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처럼 여겨지고,
일 때문에 자기 삶을 접는 사람이 프로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후배들도 결국 그렇게 배운다.
후배는 선배의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선배가 자기 삶을 다루는 방식을 배운다.
오너와 선배가 일이 곧 삶인 사람처럼 살면,
그 밑의 사람들도 점점 그렇게 믿게 된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이만큼 희생해야 진짜라고,
지금 이 일이 세상 무엇보다 너에게 중요하다고.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책임감일까, 아니면 오래 주입된 감각일까.
매번 그 순간엔 절박했는데
끝나고 나면 이상할 만큼 작아진다.
좋았던 일이든, 싫었던 일이든 지나고 나면 그저 하나의 일로 남는다.
그럴 때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까지 예민했을까.
왜 그렇게 집착하듯 붙들었을까.
좋아했던 일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할 거라고 쉽게 말하지만,
삶 전체를 담보로 요구하는 방식 속에 오래 놓이면
좋아했던 마음부터 먼저 닳는다.
일이 싫어져서가 아니라
일과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일과 삶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차가 차서 이제야 하는 말이 아니다.
언제나 생각했다. 그러지 못했을 뿐.
그 생각이 일을 대충 하자는 뜻은 아니다.
내 삶만 중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이유까지 일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
내가 일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여야 한다고 믿는다.
자아실현도 있을 수 있다.
성취감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이 삶 전체를 덮어버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일하는 목적을 잊는다.
그래서 이 문제는 개인의 다짐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집단의 위에서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오너가, 선배가, 오래 이 일을 해온 사람들이
일을 끝까지 책임지되 삶까지 바치지는 않는 태도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일을 우습게 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을 오래 해본 사람일수록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일은 그 순간에만 거대하고, 지나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매번 삶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문화라면
그건 건강한 태도라기보다 낡은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은 자신에게 물어보자.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이 말은 일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내 업에 대한 예의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삶의 자리를 전부 내줄 수는 없다는 뜻에 가깝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정상적인 질문.
답을 한번 생각해 보자.